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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Movie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올해 한국 영화의 성적은 초라하다. 마치 코로나 직전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 전성기의 피날레를 터트리고 막을 내린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2023년 하반기 시작,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같은 한국 스타 영화배우들이 출연하는 것 이외에도 한국 영화계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어두운 디스토피아를 주제로 극장가에 회심의 출사표를 던졌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거대한 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대한민국을 그리고 있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영화다. 영화 속에서는 주변 건물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물 ‘황궁 아파트’를 배경으로 그곳에 사는 거주민과 그곳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외부인들의 갈등을 다룬다. 지진 전 ‘황궁 아파트’는 보잘 것 없는 구축 아파트에 불과했다. 황궁 아파트와 맞대고 있는 신축 아파트 주민들은 황궁 아파트 주민들과 섞이고 싶지 않아 외부인 출입을 통제해 이동 경로를 막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재난 상황 속에서 ‘황궁 아파트’는 추위와 더위, 사방에 널려있는 죽음으로부터 유일한 방어막인 콘크리트를 제공해주는 역대급 입지의 아파트가 되었다.

‘황궁 아파트’는 비대위는 입주민을 살리기 위해 외부인들을 몰아내 사실상 죽게 만들고, 그 어느 때보다 입주민들은 하나로 단합해 아파트를 지켜내고, 물자를 확보한다. 나와 우리가 아닌 외부인은 배척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약탈도 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 강력한 집단을 형성한 황궁아파트는 주변에서 사람도 잡아먹는 집단으로 유명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입주민이었지만 오랜 가출로 떠나있던 ‘혜원’이 돌아오면서 황궁아파트의 결속력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첫 시작 씬부터 서울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직접 추첨제 분양을 하던 70~80년 대 흑백 티비 영상이 인상적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첫 번째 감상은, 외국인은 이 영화를 보고 절대 우리와 같은 느낌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파트야 말로 한국 집단 문화를 압축시켜놓은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같은 아파트로 묶이는 집단적 이기주의, 수직으로 쌓인 층수와 수평으로 늘어진 복도는 흡사 교도소와 같아서 상하 좌우 어디로부터 날라오는 시선을 신경써야하는 눈치를 챙겨야한다. 남들과 달라질 수는 없고 사회적 이동도 위로 올라가거나(높은 층수로 가거나), 아래로 떨어지거나(낮은 층수로 가거나), 머물러있는 3단계의 상태만 있다. 어딜가나 똑같이 생긴 아파트에서 집 한 채(한 채라는 표현이 이제 이상하다. 오히려 집 한 호실이라고 표현하는게 맞지 않을까?) 사는 게 인생의 목표인 한국인들만 느낄 수 있는 묘한 블랙코미디가 영화에 담겨있다. 사실 영화의 연출 상 거대한 지진이 발생한 후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지만, 영화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지진 없이도 현재 우리 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정확히 닮아있다.

영화적으로는 미장센, 소품 미술과 무대 배치는 모두에게 호평을 받을 만 하다. 특히 엔딩씬에 나오는 신축집은 영화 속에서 봤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쾌감(흡사 ‘인셉션’을 보는 것 같은)이 있다. 억지로 짜내는 신파 코드도, 막무가내 식 발암 캐릭터도 없는 정말 잘 만든 웰메이드 영화. 이 영화를 재난 영화라기 보다는 미스테리 스릴러 정도로 예상하고 영화관에 찾아가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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