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Book

언더그라운드 - 일본 지하철 사린 사건

재난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재난의 징조는 언제나 우리 주위에 있었다. 언더그라운드는 90년대 중반 도쿄에서 일어났던 지하철 사린 가스 살포 사건에 대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언더그라운드라는 책 제목 자체는 지하철을 의미한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지만, 소설과 에세이 작가로 유명한 하루키가 왜 지하철 사린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 취재를 하고 그 내용을 엮에 책으로 냈는지 도저히 추측할 수 없다는 점이 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였다.

언더그라운드는 크게 4개의 지하철 노선인 지요다 선, 마루노우치 선(이케부쿠로 행), 히비야 선(나카메구로 발), 히비야 선(나카메구로 행)에서 일어났던 간략한 사건 개요와 그 노선을 타고 있었던 사린 가스 피해자들의 진술로 이루어져있다. 대부분의 진술이 비슷한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피해자의 배경(태어난 곳, 현재 사는 곳, 직업 등)과 사건 당일 이야기, 그리고 그 후에 현재 삶과 후유증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모든 피해자들이 각자의 삶을 가지고 있는 우리(피해를 받지 않은)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이 사건이 그들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생생한 진술로서 전해진다. 하루키가 일부러 피해자들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 및 수정하지 않은 것은 온전히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인터뷰는 더 날 것의 느낌이 남아있다. 수 십 명의 인터뷰를 보고 있으면 이전의 삶은 각각 달랐어도, 사건 당일 이야기와 사건 이후 겪고 있는 후유증 증세는 대체로 비슷하기 때문에 내가 같은 부분을 다시 읽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이야기에 익숙해질 때쯤, 피해자 본인이 없는 마지막 인터뷰가 나온다. 사망자, 고 와다 에이지 씨의 이야기다. 피해자 가족들과의 인터뷰로 피해자의 원래의 삶을 다루는 것은 앞선 챕터와 동일하다. 하지만 사건 당일의 이야기도, 사건 이후의 이야기도 이미 세상에 없는 피해자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하루키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 '지표 없는 악몽 - 우리는 어디로 가려하는가?'가 나온다. 그가 <언더그라운드> 책을 쓴 이유와 하루키의 덧붙인 이야기를 담았다. 하루키가 알고 싶었던 그 첫 번째. 3월 20일 아침 도쿄의 지하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매스미디어와 대중이 만든 '정의', '제정신', '정상'이라는 쉬운 분류말고 이 사건을 통해 정말로 우리가, 사회가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게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사건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다. 사건의 원인은 표면적으로 사이비 종교인 옴진리교가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언론과 대중 또한 옴진리교에 강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작가는 사린 사건의 근본적 원인은 옴진리교에서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왜 이 나라(일본)와 사람들 사이에서 옴진리교가 나올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일본 사회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자신도 이전에 옴진리교 사람들을 보고도 못본 척 회피하는 동시에 불쾌함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 불쾌함이야말로 그들의 어리석고 맹목적인 모습이 지닌 결핍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비추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못 본 척하고 지나친 다음 더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재빨리 잊어버리는 것이다(어쩌면 바이마르 시대의 독일 지식인도 히틀러를 처음 보았을 때 같은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개인의 자아 결핍이 사회 속 거대한 공터가 되고 그 거대한 공터에는 옴진리교와 같은 괴상한 생명체가 자리잡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본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해있는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다.

미국의 작가 러셀 뱅크스는 소설 『대륙 이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아보다 큰 힘을 가진 것, 이를테면 역사, 신, 무의식에 자신을 내맡겼을 때, 사람은 아주 간단하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맥락을 잃어버린다. 한 편의 드라마여야 할 인생의 흐름이 끊겨버리는 것이다. 
당신은 누군가(무언가)에게 자아의 일정한 부분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어떤 제도=시스템에 인격의 일부를 맡기고 있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제도는 언젠가 당신을 향해 어떤 ‘광기’를 요구하지 않을까? 당신의 ‘자율적 파워 프로세스’는 올바른 내적 합의점에 도달해 있는가? 당신이 지금 갖고 있는 이야기는 정말로 당신의 이야기일까? 당신이 꾸고 있는 꿈은 정말로 당신 자신의 꿈일까? 그것은 언제 어떤 악몽으로 변해버릴지 모르는 누군가의 꿈이 아닐까? 

이 책의 마지막 파트를 읽을 때 나는 업무차 일본, 도쿄에 있었다. 대략 사건 발생 후 30년이 지난 뒤였지만, 이 사건의 현장인 도쿄 지하철에서 '지하철 사린 사건'을 다룬 '언더그라운드' 책을 읽는 것은 매우 특별하고 기묘한 경험이다. 지금의 일본 사회는 사린 사건 참사로부터 얼마나 발전했을까? 또 우리는 수 많은 참사를 겪으면서 90년대 일본이 사린 사건 당시 했던 실수를 그대로 하고 있지는 않은가? 언론과 여론은 피해자의 아픔과 호소를 들어주기 보다는 사건을 흥미 위주의 자극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참사라는 문제가 발생하면 1) 현재 피해를 수습하고, 2) 원인을 분석하여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에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2022년, 지금도 우리는 피해자를 탓하고 그들의 아픔 호소를 허약함과 보상에 대한 욕심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언제나 원인 파악보다는 책임소재를 지워 빠르게 현장을 흙으로 덮어버린다. 우리의 가능성과 미래도 함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