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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소설 '류' - 히가시야마 아키라

 

올 여름은 매우 더운 날씨 속에서도 자주 내리는 비 탓에 흐린 날들이 많았다. 덕분에 이번 여름은 나에게 저녁에도 덥고 습한 날씨를 선사해주었다. 이런 날씨 속에서는 에어컨 아래에서 못다 읽은 책더미를 하나씩 해치워가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피서'였다. 피서에는 실용서보다는 소설이 좀 더 잘 어울리기에, 소설 책을 연속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소설 '류'는 그 중에서도 자신의 냄새를 가진 소설이었고 책을 몇 번 내려놓지 않고 완독할 정도로 흡입력 있는 소설이었다. 말 그대로 글을 읽으면서 그 특유의 냄새가 나는 분위기와 인물과 상황 묘사가 뛰어난 소설이다. 이 소설이 2015년 일본 나오키상을 수상했다고 하기에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소설 같은 주제와 이야기를 다룰 것을 예상하고 책을 집어들었는데

소설 내용은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이 끝나고 중국과 대만으로 나뉜 불안정한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에 빗대어보면 6.25 전쟁이 막 끝나고 50-60년대 같은 느낌일까? 이념이 낳은 전쟁에서 정작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이 서있던 곳에 따라 편이 갈리고 친구와 형제는 적이 되버렸다.

이 녀석은 자기 부모를 괴롭힌 공산당 일가를 모조리 죽이고 국민당에 들어왔어. 다들 비슷한 사연이었어. 이쪽과 싸워서 저쪽에 들어가거나 이쪽에서 밥을 먹여주니 이쪽 편이 되는 거지. 공산당도 국민당도 하는 짓은 같아. 다른 마을에 마구 쳐들어가 돈과 먹을거리를 빼앗았지. 그렇게 백성들을 먹어 치우며 같은 일을 되풀이했어. 전쟁이란 그런거야 
어쩌다 밥을 먹여준 게 국민당 부대였어. 구오 할아버지는 묵직한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그게 혹시 공산당이었으면 우리는 다 공산당을 따랐겠지. 사람의 인생이란 그런 거란다. 누구를 위해 목숨을 던질 것인지도, 그렇게 매사 결정되지”

 

전후 분단된 세상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와 전쟁을 직접 겪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이들이 섞여 만든 격동의 시대에 주인공이 화자가 되어 '나'가 겪은 사건들을 시간을 따라간다. 나에게 있어 중요한 사건들. 할아버지의 죽음, 입시, 입대, 싸움, 미스테리, 첫 사랑, 결혼을 독자에게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가장 첫 장면에 나왔던 산둥반도의 한 마을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산둥에 방문하여 할아버지가 엮여있는 마을에 도달한다. 거기서 수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지독하게 쌓여있는 원한을 발견한다.

소설은 이상하게도 산둥반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소설이었다면 산둥반도 씬에서 소설을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 '류'에서는 그 이후 결혼생활이 어떻게 끝날 것임을 미리 알려주면서도 자신이 결혼하고, 아버지가 된다는 벅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설명한다. 마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처럼. 인생은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우리를 밀어넣는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도, 심지어 어떤 선택을 하지 않아도 다음 지점으로 우리를 흘려보낸다. 그렇게 인생은 이어진다.

아버지가 된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 나는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인생은 이어진다. 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나는 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말할 수 없다. 그런 짓을 하면 이 행복한 순간을 더럽히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은 그저 이렇게 말하며 이 이야기를 끝내자. 그때 여자아이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닌 것은, 우리의 자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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