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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사람은 실패를 계속하다보면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그 사람의 '의지 문제'라기 보다는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실패하는 것들은 포기하고, 성공하는 것만 계속 같은 방식으로 시도하는 강화 피드백 방식이 DNA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게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항상 성공만 맛보고 살 수는 없다. 어느 단계에서 우리는 실패를 마주하기도, 혹은 생각보다 자주 실패를 겪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실패를 발판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실패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다.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흐르기 때문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후회와 실패가 인생에 가득한 주인공 '노라 시드'가시간을 되돌려보는 소설이다. 죽음을 앞둔 노라 시드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눈을 뜬다. 그곳에서 노라 시드는 학창시절 도서관에서 같이 체스를 두던 엘름 부인을 만난다. 엘름 부인은 이상한 도서관에서 10년 전처럼 여전히 체스를 두고 있지만 책꽂이의 책들은 10년 전 도서관 책이 아니다. 각 책마다 인생을 살면서 만난 수 많은 분기점에서 다른 선택을 한 '노라 시드'의 삶이 담겨있고 이 책을 선택해서 펼쳐보면 그 삶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자신이 후회하고 있는 일들, 혹은 자신에게 주어졌던 그 무한한 가능성을 성공으로 이끌어간 삶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렸을 적 힘들어서 포기헀던 수영을 끝까지 해서 올림픽 메달리스트 영웅이 되어있는 삶. 오빠와 같이한 밴드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어나가 성공한 삶, 친구의 권유에 따라 호주에서 사는 삶 등 다양한 현재의 삶을 체험해본다. 어떤 삶은 성공했고, 어떤 삶에는 오빠가 세상에 없으며, 또 어떤 삶에는 실패해 루저로 살아가고 있다.

다른 타임리프 소설과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다른 점은, 과거의 나, 미래의 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닌, 삶의 분기점에서 수 없이 갈라져 나간 평행 세계의 '나'의 삶을 만나러 간다는 것. 그래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만나는 새로운 인생이 결코 현재의 실존하는 나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노라는 이 다른 행성에 사는 노라 시드의 삶에서 두 가지 선택 밖에 할 수 없다. 이번 행성에 남거나 혹은 떠나거나. 과연 노라는 자기가 꿈꾸던, 최고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노라 시드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삶 속에 남아 남은 여생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 끝 부분에 나오는 "내가 배운 것들(한때 온갖 삶을 살았으나 지금은 보잘것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쓰는 글)"은 두고두고 봐도 좋을 만한 글귀다. 이 소설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후회'는 우리 삶을 쭈글쭈글하게 할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진행되고 있고 우리는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당신이 인생의 절반을, 혹은 인생의 후반부를 살고 있더라도 당신 눈 앞에 남아있는 선택지는 무한하게 많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온전히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책을 덮는 순간 작가가 전해주려는 말이 들리는 따뜻하면서 정신이 번쩍드는 신묘한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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