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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여자 없는 남자들 - 무라카미 하루키

처음 이 책을 샀을 때, 동일 제목을 가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집이 있고 그 단편집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은 잠시 책꽂이에 두고 헤밍웨이의 단편집을 읽어나갔다. 그러다가 헤밍웨이의 단편집은 다 읽었지만 원래 보려던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책은 기억 속 책꽂이에서 나오지 못하고 잊혀져 갔다. 3년이 지났을까, 이사짐을 정리하는 와중에 다시 이 책을 만났다. 이번에는 그 때 읽었던 헤밍웨이의 단편집이 기억나지 않았지만 아무렴 어떨까. 하루키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단편집은 주로 제목으로 사용되는 메인 단편을 소설 마지막에 배치하거나 가장 핵심인 중간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단편집을 독자로 하여금 다 읽을 수 있게 만드는 큰 원동력은 바로 책 가장 앞에 위치한 소설이다. 이 소설집에서는 가장 처음 '드라이브 마이카'가 실려있다. 남자 연극배우(가후쿠)와 그가 타고 나니는 차에 운전사로 취업한 여자 운전사(미사키)의 대화를 통해 남자의 과거를 짚어나가는 이야기다. 가후쿠가 사별한 아내의 외도에 대한 이야기를 미사키와 대화를 통해 회상하면서 이야기는 더 깊어진다. 독자는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가후쿠의 노란색 사브 900 컨버터블 조수석에 앉아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 것만 같은 몰입감으로 단편집을 성공적으로 붙잡고 있게 만든다.

그 뒤의 예스터데이, 독립기관, 셰에라자드, 기노. 모두 술술 읽히는 특유의 하루키체와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책을 계속 펼 수 밖에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예스터데이와 독립기관은 화자가 관찰자 시점에서 두 남녀의 사랑과 과거, 현재를 바라보는 이야기. 셰에라자드는 뭔가 비밀스러운 일로 격리 생활을 하고 있는 주인공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찾아오는 여자와 일어나는 이야기다. 읽는 내내 1Q84 같은 신비로운 이야기와 흥미로운 전개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단순 타인을 넘어서 남녀가 가지고 있는 유전학적 차이는 신체와 정신 모두 차이를 만들어낸다. 서로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셰에라자드와 카프카의 변신을 뒤집은 '사랑하는 잠자'를 제외한 소설 속 모든 이야기는 남녀가 헤어진 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셰에라자드에서도 언젠가 찾아올 끝을 하바라는 걱정하고 있다.)

어쩌면 남여 두 사람의 관계, 사랑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처럼 끝나고나서야 실존적인 형체를 정의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만나기 전부터, 사랑하는 동안, 사랑이 끝난 후까지 서로를 단 한 순간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 불완전함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눈다. 함께있는 순간 만큼은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토대로. 우리는 얼마나 불안정한 믿음 위에서 사랑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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