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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잠실동 사람들

‘~동 사람들’ 이라는 소설 제목이 여럿 있었다. 대표적으로 떠오르는게 교과서에도 실렸던 ‘원미동 사람들’일까? 동네 사람들을 묶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만큼 과거에는 동네라는 바운더리가 사람을 묶어주는 큰 역할을 했었다. 현재는 동네는 사라지고, 아파트만 남았다. 아파트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 갖지도 않고, 관심을 갖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윗집과 아랫집은 이웃이 아니라 소음공해를 일으키고, 불만을 토로하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남아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잠재적 가해자와 잠재적 피해자들이 한 편으로 묶이기도 한다. 집주변에 장애인 보호 시설이 들어오거나, 임대 아파트가 들어오면 결사 반대의 구호 아래에서 한 이웃이 되기도 한다. 집 값이라는 개인의 욕망이 끈끈한 단결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런 아파트식 사회를 ‘~동 사람들’로 묶어낸건 꽤나 과감한 시도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계급을 고착화 시키기 위한 '교육'이라는 수단으로 단결력을 갖는다. 실제 아파트 명을 달고 글을 쓴건 작가가 사전조사를 많이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소설의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서였을까. 소설의 시작부터 가난한 대학생 이서영이 자신의 누추한 자취방에서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지환 아빠와 성매매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마 이 소설 전체에 드리고 있는 퀘퀘한 냄새는 첫 장면에서부터 나오는 듯하다. 욕망이라는, 인간의 날 것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낯설지는 않지만, 굳이 맡고 싶진 않은 냄새다. 

 

작가는 각 챕터마다 소설 속에서 마주치는 10명이 넘는 시점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 옴니버스 식 소설을 통해 현대사회에 버젓이 있는 ‘계급’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야만스럽다는 꼬리표를 붙이지만, 현대사회에선 이 ‘계급’을 자본주의의 상장처럼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이 다를까. 그리고 그 ‘계급’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고,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교육’에 중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의 등장인물을 크게 나눠보면 외부 관찰자(대학생 이서영, 카페 주인, 파견도우미), 교사(초등학교 교사, 과외교사, 원어민 강사, 학습지 교사), 학부모(엄마,아빠)로 나눠진다. 자녀에게 교육을 시키고 서포트를 해주는 부모와, 교육자와 피교육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진행되지만, 정작 교육을 받는 '학생'인 아이들의 관점은 마지막에 단 한 번만 나온다. 소설 속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든, 자기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는 맹목적이다. 무리한 전세 대출을 받아서까지 잠실동 아파트에 살면서 아이들을 이너써클 레벨로 맞추려고 노력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까? 작가는 소설 속 엄마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감정을 다루면서 맹목적인 그들의 행동에 자기변명을 늘어뜨린다. 작년 말에 인기를 끌던 상위 1% 계층의 자녀 교육을 다룬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떠오르기도 한다.

 

분명 과거에, 100년보다 더 과거에는 '교육'을 받는 다는 것은 양반 계층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수학을 통해 과거시험에 응시해 나랏님이 내려주는 녹봉을 받는 것이, 그 시대에서 출세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계급 해방이 되면서, 왕정이 아니라, 중앙 집권의 국가가 생기면서 가장 먼저 세운 제도 중 하나는 공교육 제도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교육을 통해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역할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 천민과 양반이 사라진지, 100년이 지난 지금에는 누구나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공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유력한 집안의 자제만 다닐 수 있었던 서당들처럼, 여전히 정해진 몇몇 그들만이 받을 수 있는 교육과 기회는 여전하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계급없는 계급사회를, 기회의 균등을, 사회적 박탈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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