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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Bad Blood 배드블러드: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작년에 실리콘밸리에서 엘리자베스 홈즈가 벌인 초유의 사기극을 담은 Bad Blood 책이 출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막 출간됐을 때, 킨들에서 서문을 읽어보았는데 탐사보도 기사라고 보기보다는 매우 흥미로운 스릴러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1년이 지난 이제서야 ‘Bad Blood’를 보게 되었다. 꽤나 책을 늦게 읽었음에도 현실세계에서 이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아직 엘리자베스 홈즈와 발와니는 법정 싸움 중이고, 최대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정 전략을 세워나가고 있다. 엘리자베스 홈즈의 경우 호텔 재벌과 열애설이 나오기도 했었다. 

 

엘리자베스가 그렇게도 흉내내고 싶던 스티브 잡스에게는 윌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전기가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조상을 다루는 뿌리부터, 학창시절, 창업과 경험 등 모든 생애를 여러 목격자들의 증언을 이어붙여 만들었다. 그래서 윌터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책을 보고 나면, 왠지모르게 스티브 잡스를 단순히 성공한 애플 CEO가 아닌 인간적인 측면에서 더 잘 이해할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기마련이다. 엘리자베스는 스티브잡스가 세상을 떠나자 애플기를 찾아서 회사에 걸어두려고 했고, 윌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잡스 전기를 읽고, 스티브 잡스 따라하기에 더 열중했다고 한다(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엘리자베스는 적어도 자신의 전기에 있어서 만큼은, 스티브 잡스를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윌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전기가 있다면, 엘리자베스 홈즈에게는 존 캐리루의 ‘Bad Blood’가 있기 때문이다. Bad Blood는 고의적으로 조롱의 의미를 담아서 인지, 아니면 존 캐리루 기자의 집요함 덕분인지, 윌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와 유사한 흐름으로 엘리자베스 홈즈의 뿌리부터 생애 전반을 다루고 있다. 그의 조상부터, 학창 시절, 스탠포드 재학 시절까지 그녀의 성격과 추후에 저지른 최악의 윤리의식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낱낱이 알아보고자 작가의 치열한 탐사 현장의 느낌이 잘 살아있다.

 

학창시절부터 ‘돈과 성공’에 강하게 집착했던 엘리자베스는 그 열정만큼이나 뛰어난 언변과 유명인사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그녀의 ‘왜곡의 장’을 끌어들여 그녀의 말을 모두 믿게 만들었다. 만약 그녀가 수없이 말했던 단 몇 방울의 채혈로도 질병을 판단할 수 있다라는 뛰어난 회사, 제품소개 프레젠테이션과 이를 이용해 많은 환자들의 비용 및 치료 효율성을 올려 의료 산업의 판도를 바꾸려는 그녀의 비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면, 그녀는 정말 의료산업계의 ‘스티브잡스’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뛰어난 언변만 있었을뿐 실제 기술이 뒷 받침이 되지 않는다면 그녀가 주장하는 것은 허황된 공상과학 소설이나 다름이 없다.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적었다시피, 실리콘밸리에서도 화려한 제품 소개로 사람들의 주목을 단숨에 이끄는 제품/서비스들이 실제 구현은 하지 않고 프로토타입 수준으로 투자를 받고, 성장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최근 사례를 보자면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더블, 화웨이의 메이트 폴더블 정도가 그런 사례일까? 폴더블이라는 새로운 시장의 최초가 되기 위해 제대로 완성도 되지 않은 제품을 소개하고, 심지어 테스트도 진행했다. 이러한 불안정한 제품발표는 테스트 제품 회수 및 제품 출시 연기라는 결말을 낳았다. 다만, 삼성전자가 그 핸드폰을 출시하던, 혹은 끝내 기술적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아 출시하지 못한다고 해도, 내 인생의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사실 상관없을 정도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테라노스로 저지른 일은 완전 다른 일이다. 테라노스의 에디슨, 미니랩 제품 테스트는 사람들의 건강과 직결하는 결과를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폴더블 핸드폰이 수 백번 접었을 때 문제가 생긴다면, 불편함을 겪고 제품을 환불받거나, 교환 받으면 되는 문제겠지만, 미니랩의 잘못된 결과를 환자에게 알려준다면, 단순 불편함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실제 질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발견을 늦게 해서 건강과 생명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고, 걸리지도 않은 질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여 드는 금전적, 정서적 비용은 꽤나 커질 수도 있는 문제다.

 

단순 제품의 완성도 문제 뿐만 아니라, 테라노스는 여러 윤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테라노스에서 실제 테스트를 수행하던 직원들이 회사를 나와서 폭로를 하게된 계기는 바로 이 형편없는 완성도의 제품이 실제 환자들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고, 상습적이고 반복적인 결과 데이터 조작을 통해서(이상 값만 취하기, 데이터 지우기, 사용화된 타사 제품으로 테스트한 결과 끼워넣기 등) 환자와 투자자들, 언론, 대중을 속였기 때문이다.

 

생명공학 기술에 실제 질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테스트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와 데이터 조작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와 유사하다. 책을 읽는 내내 전국민, 나아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줄기세포 사기를 쳤던 황우석 사례와 엘리자베스의 사례가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똑같이 의료 산업에 커다란 혁신을 가져올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함으로서 대중의 관심과 투자를 받았다. 여러 미디어, 강연 등에 참석해서 자신들의 비전이 가져올 변화를 말했다. 하지만 연구실에서는 달랐다. 랩실을 매우 고압적으로 관리했고, 정작 본인들은 연구실보다는 카메라 앞을 더 선호했다. 나는 이 두 사건을 통해 우리가 영웅적인 서사에 빠져들 필요가 없음을 말하고 싶다. 세상을 바꾸는 기술은 기자들 앞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연구실에서 자신의 하루 대부분을 쏟아내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최대한 심플하면서도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도 완전히 통제하고 싶어했다. 아이폰, 맥북 등을 열어보면 여러 회로와 칩, 배터리 등 부품들이 예술에 가까울 정도로 배치/집약 되어 있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원한 바이기도 하지만, 그가 만들어내거나, 달성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애플 엔지니어들이 고심과 테스트를 한 끝에 달성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이 원하는 아이폰을 만들어낸 것은 애플이라는 회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스티브 잡스의 외향적인 것, 행동까지도 따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티브잡스를 따라한다고 성공한 CEO가 될 수는 없다. 테라노스는 애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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