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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집에서 막걸리 담그기

 

동동주와 막걸리의 차이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다. 담그는 과정은 동일하지만 위에 맑은 부분은 분리하여 동동주로 부르고, 밑으로 가라앉은 지게와 같이 막 걸러서 먹는 술을 막걸리라고 한다. 원료가 같아 동동주와 막걸리의 경계가 애매하다보니 실제로 파전집에서 막걸리를 양은 주전자에 담아 동동주로 파는 경우도 많다. 요즘은 동동주를 따로 막걸리 병처럼 담아파는 곳도 생겼지만 아무래도 막걸리가 동동주보다 더 접하기 쉽다. 

 

돌아가신 친척 할머니 중에서 동동주를 기가막히게 담그는 분이 계셨다고 한다. 항아리 단위로 담궈서 친척들이 그 집에서 동동주를 얻어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니 그 맛이 사뭇 궁금한데 그 때는 내가 너무 어려 동동주를 마실 수 없었다는 사실이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사라진 맛'이다. 

 

 

요즘은 막걸리를 집에서 담그기 쉽게 밀키트처럼 필요한 재료와 도구를 키트에 담아 판매한다고 해서 구매해봤다. 설명서도 나름 자세하고 블로그 후기도 꽤 있어서 어렵지 않게 집에서 막걸리 담그기를 시도해봤다. 온도 조절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하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집 온도가 낮에는 어떻게 변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운이 따르길 기도하거나 지금은 뵐 수 없는 친척 동동주 할머니의 술 담그는 재능을 조금이라도 물려받았길 기대하는 수 밖에.

 

 

동봉된 매뉴얼을 100프로 따르지는 않았는데 2주 쯤 지나 제법 술 같은 느낌이 드는 뽀얀 막걸리를 만날 수 있었다. 시중에서 파는 막걸리를 생각하고 먹어보면 아무 맛도 안 난다. 고소하면서도 쌉쌀한 곡물 맛과 알코올 기운 뿐이다. 단 맛은 여기에 설탕이나 꿀을 부어 넣어야지만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원액 상태에 토닉워터나 사이다를 섞어 먹는 편이 좋았다. 너무 달지 않게, 숙취도 심하지 않은 홈메이드 막걸리다. 친구들도 나눠주고, 놀러온 지인들과 나눠마시니 나쁘지 않았다. 

 

막걸리를 만드는 신기한 경험과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일은 생각외로 즐거운 순간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회사와 생활 사이에 신선한 체험. 조만간 남은 누룩과 찹쌀로 2회차 막걸리를 만들 예정이다. 2회차에는 일반 플레인 막걸리가 아니라 복분자 같은 다른 테마를 첨가할 예정이다. 동동주 할머니처럼 항아리 째 술을 담가 사람들에게 퍼줄 수는 없다. 하지만 직접 시간과 힘을 들여 만들고 그 결과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눠 먹을 수 있는 과정 속에서 동동주 할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항아리에 누룩과 물을 채웠을지 언뜻 상상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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