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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Book]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부끄럽게도 신영복 선생님의 작고 소식을 듣고 나서야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가 감옥에서 쓴 책도 다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서야 읽어보았다. 그가 남긴 흔적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곁에 있어왔다. 서민들의 가벼운 주머니로 텅 빈 마음을 채워주는 소주, 처음처럼의 명칭과 그 글씨체가 바로 신영복 선생님이 남긴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장 값싸게 정신을 살찌울 수 있는 책을 구입하러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면 볼 수 있는 교보문고의 모토인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또한 그의 흔적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도 마찬가지로 서민과 가까운 문체로 마치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듯 (실제로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묶어 책으로 나온 것이다.) 소근소근 이야기를 건네온다. 감옥 속에서 반복되는 자신의 일상과 그 속에서 발견한 작은 진리와 생각들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이렇게 두꺼운 수필을 읽으면서도 질리거나 지루하지 않고 두고두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도 술술 읽히고 눈에 잘 들어온다. 특히 필자가 군대를 갔다온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물론 병역과 징역을 비교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갇힌 공간에서 자유를 빼앗긴 일상이 주는 감상에 대해 크게 공감할 수 있었고 그의 글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

감옥에 들어오기 전에도 한 번씩 읽은 책이지만 책이란 자기가(독자가) 변하면 내용도 변하는지 다른 느낌을 받는다. 8호 감방은 낮이나 밤이나 같은 조명이지만 저녁시간은 더 아늑하다. 이것은 이제 밤을 기다린다는 가라앉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

“내가 있는 감방의 벽에, 누군가가 청년은 다시 오지 않고 하루는 새벽이 없다.’ 적어놓았다. 나는 때에 찌들은 낙서 네게 전하고 싶다. “

공장의 불빛은 내려놓고 잠자리에 들지 못하게 합니다. 밤새워 일하는 사람들이 켜놓은 불빛은 그렇지 않은사람까지도 밝혀줍니다. “


감옥에서 무려 20년이다. 무기징역을 받아 구속되어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여 교수를 지내던 사회적 ‘성공’을 미래까지 이어나갈 꿈을 꾸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는 절망만 하고 있지 않는다. 그가 ‘성공’한 삶을 살았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동료들, 감옥에서의 사색과 독서, 그 결과로 나온 따뜻한 문장과 반짝이는 글귀를 남겼다. 그가 편지를 보내는 대상이 형, 동생, 형수, 부모님 등 다양하듯 편지에서 다루는 이야기 또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동료의 이야기부터 날씨, 계절 이야기 같은 소소한 이야기부터 역사, 저널리즘, 그의 본질에 대한 탐구까지. 슬픔과 아픔 속에서 그는 작은 기쁨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것을 넘어선 소중한 의미를 찾아내기도 한다.

“불행은 대개 행복보다 오래 계속된다는 점에서 고통스러울 뿐이다. 행복도 불행만큼 오래 계속된다면 그것 역시 고통이 아닐 없을 것이다. “

“10
. 저는 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을 버렸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은 서운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버린다는 것은 상추를 솎아내는, 것을 키우는 손길이기도 것입니다
. “

동시에 그는 감옥에서의 사색이, 독서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면 어떨지 걱정하기도 한다. 우리는 20년 간 그의 수기 같은 편지들을 읽으면서 그의 인생의 4분의 1을 보낸 감옥에서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지만 정작 그 글 속에 있는 70~80년 대의 신영복은 언제나 공부하고 탐구하는 자세로 삶을 바라본다. 부자연스러운 격리가 그에게 삶을 마주할 공간을 주었고 긴 세월의 수감 기간이 그에게 본질에 대한 탐구의 역사를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모든 편지마다 공감하는 이야기에 밑 줄을 긋고 옮겨 적어 가슴 속에 몇 번이고 되새기고 싶은 문구들이 나오는 따스한 책이었다. 가슴이 따스해지기만 하는 책은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의 글에서 배울 점이 많다.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상이 무엇인가보다 그 사상을 행동으로 옮겨야할 순간 정말 자신의 신념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의 글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우리가 훌륭한 사상을 갖기가 어렵다고 하는 까닭은 사상 자체가 무슨 난해한 내용이나 복잡한 체계를 사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상이란 그것의 내용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천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 실현된 것만큼의 사상만이 자기 것이며 나머지는 아무리 강론하고 공감하더라도 결코 자기 것이 아닙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으로 하는 경우 이를 도둑이라 부르고 있거니와, 훌륭한 사상을 말하되 그에 못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 우리르 이를 무어라 이름해야 하는지... “

수력발전소에서 발전한 전기로 음악을 들으면 음질이 다르다?는 우스갯 소리처럼 나는 책을 읽을 때도 독자가 처한 상황, 독서를 하는 계절, 시간 등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의미, 책과 독자의 교류에 있어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는 3달 동안 지방 기숙사에 갇혀 회사-기숙사-회사-기숙사를 반복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이 책이 더 큰 의미로 다가왔을지 모르겠다. 차가운 공장과 경직된 인간관계 속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면서 나는 또 공장으로부터의 사색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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