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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Review] 밀정

출연진만으로도 관객들을 설레게하는 영화가 있다. 밀정은 그런면에서 트레일러만 보고도 반드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들이 등장한다. 송강호, 공유, 한지민, 그리고 이제는 출연진으로 공공연히 다 아는 그 배우까지(그 분 출연 사실을 밝히는 것 자체가 스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작년에 대박을 쳤던 최동훈 감독의 ‘암살’과 같은 무대와 주제인 일제강점기의 독립투사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는 일년에 한 번씩은 이런 독립투사를 다룬 영화나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가 등장하는 것도 교육적으로도 유익하고 그들의 희생을 다시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암살과 대조적으로 영화가 지향하는 점과 영화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상당히 다르다. 암살이 오락영화를 표방하면서 직관적이고 시원시원한 전개를 보여준다면 밀정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비밀스러운 이야기같다. 액션신이라고는 첫장면과 기차 안에서가 전부다. 액션이나 화려함으로 승부하는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인물 심리의 변화가 주요한 영화였다. 가장 복잡한 내면 연기가 필요한 이정출 역에 송강호는 적합한 캐스팅이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이정출은 경계에 서있는 인물이었다. 무겁지도 혹은 가볍지도 않은 인물기면서 안정적이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자리와 희생과 죽음만이 있는 조국의 편에 서야할지 고민하는 인물을 잘 연기해냈다. 스토리상 개연성이 없는 부분도 있지만 송강호의 이정출 연기로 어느정도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공유는 얼마 전 천만 관객이 찾아본 부산행 영화에 이어 경성행 열차에 탔다. 그가 연기한 김우진이라는 인물은 비밀 독립 투사로서 경성에서는 자금책을 조달하는 리더 역할을 했고 상해에서는 이정출을 꾀는 역할과 함께 경성으로 폭탄을 무사히 싣고 가야하는 역할을 맡았다. 무대인사에서 영화 속 자신의 '수트빨’을 언급했을 만큼 비쥬얼적인 면에서 공유는 더할 나위 없는 조선의 댄디한 신 청년으로 등장했다. 이정출과의 줄다리기를 하는 부분에서 어색한 부분도 다소 존재했지만 부산행에 이어서 기대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커피프린스 덕분에 차지한? 카누 CF 말고 스크린에서도 그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영화 전체의 스토리는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과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대립이다. 일제시대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이정출이 의열단과 의열단장을 잡아 출세하려는 생각을 가졌다. 그가 의열단의 자금책이자 리더인 김우진을 만나 그를 감시하기 시작한다. 이정출은 히로시 부장의 명령에 따라 같은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하시모토와 경쟁을 하며 상해에서 의열단을 모두 검거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모든 것은 이정출의 선택에 달려있게 된다. 그가 말을 하지 않으면 의열단은 폭탄을 경성으로 들여갈 것이고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의열단을 전부 검거할 수도 있는 상황이 펼쳐진다. 경성행 기차에서 이정출은 자기 편으로 누굴 선택할지 결정해야한다. 의열단 내부에도 밀정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기차 안에서 갈등은 극에 달한다. 이 기차 안에서의 폭발한 심리적 갈등은, 경성에서도 이어진다. 

‘암살’보다 시원한 영화 전개를 보여주지 않지만 ‘밀정’이 의미있는 영화인 이유는 단순히 독립투쟁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 인물의 가진 복잡한 심리를 잘 묘사해 현실에 있을법한 입체적인 인물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 없이 많은 선택을 내린다. 그 선택들 중에는 명분이 있을 때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선택해버린 것들도 수 없이 많다. 이정출이라는 입체적인 인물은 기본적으로 악을 베이스로 두는 인물이 아니다. 그냥 우리와 같은 소시민일 뿐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일본 경찰 제복을 입고 있음에도 마음 속에는 옛 동료와 민족에 대한 부채의식이 존재했다. 그가 처음 김우진의 꾐을 들었을때, 의열단장을 만났을 때도 그는 조국을 위해 그들을 도와야겠다고 결단 내리지 못한다. 중요한 결정을 앞둔 모두가 그렇듯 그도 우유분단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정을 미룬다. 그의 행동이 때로는 일본경찰에 도움이 될 때도, 의열단에 도움이 될 때도 있는 애매한 경계선에 서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이정출에 대한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나라를 팔았던 매국노로 기억이 남는가 아니면 그 반대로 기억이 남는가? 긴 인생 동안의 우리는 수 많은 선택지 중에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너무 단편적인 잘못으로만 그를 매도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입체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있고 단 몇 가지의 눈에 보이는 결과만으로 그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밀정은 ‘낙인’을 찍기에는 인간이 가진 일관성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고민해보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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