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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 꾿빠이 이상


이상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고등학교 교과서였다. 내가 그의 시를, 그리고 그의 소설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사람의 작품이 어떻게 교과서에 실렸지?하는 의문뿐이었다.


그의 제1의 아해가 등장하는 시만 봐도 아득했다. 도대체 이 시는 정체가 뭐지, 이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 시를 쓴거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음울하고 알 수 없는 단어로 가득한 소설 ‘날개’ 까지. 보수적이라면 어디도 부럽지 않을 우리나라에서 이상이 교과서에 소설에 실렸다는 것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다. 


최근 이상의 작품들이 조명되고 이상이라는 캐릭터가 재창조되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등 (경성탐정 이상 등) 그 어느 때보다 이상이라는 천재작가에 대한 이목이 쏠려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다들 제각기 입맛대로 천재의 이미지를 씌운 캐릭터를 만들뿐 이상과 그의 작품, 그리고 김해경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룬 소설이 있던가.


‘꾿빠이 이상’은 작가의 이상에 대한 열정적인 연구와 애착이 없었다면 쓸 수 없는 소설이었다. 이상의 소설과 시를 전부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세세하게 해부하여 이상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미로를 헤쳐나가는 본인의 모습을 소설 속에 담았다. 


이상의 작품을 모두 읽어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독자인 나는 이 소설이 어려웠다. 소설이 너무 전문적인 내용만 다루고 있거나 난해한 그의 작품에 대해 난해한 잣대와 해석을 독자에게 들이밀었다면 자칫 지루해지거나 독서에 집중을 저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무겁게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굳빠이 이상>은 책을 덮어 버릴정도의 어려움을 가지지 않으면서 책을 덮고나면 이상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작가가 무서울 정도로 이상에 대한 추적했을 모습이 떠오른다.


이 소설은 온전히 이상의 텍스트와 행적을 분석하는 작업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사실 김연화와 서혁민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이상의 전기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 속에서 말한다.


’전기 집필이란 고작 1백여 개의 조각만을 겨우 긁어모은 뒤, 1천 개의 조각이 필요한 퍼즐을 완성시키겠다고 덤비는 아이의 무모한 유희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우거지, 쓰레기까지 포함된 1백여 개의 조각만으로 그림이 완성됐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전기 작가는 자신의 글에 권위를 부여할 몇 가지 제도적 장치를 끌어들여야 한다. 예컨대 두 점 사이에 선을 긋기 위해서 직선 개념을 도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전기 작가가 사실과 픽션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글을 쓴다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하는 이러한 전기 산업의 몇 가지 규칙은 원칙적으로 옳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장 잘 씌어진 전기가 그 대상 인물의 삶과 조화롭게 어울린다는 말은 아니다.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를 잇는 선이 직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듯이 말이다. 전기란 결국 긁어모은 허섭스레기들로 괴상망측한그림을 짜맞춰놓은 창작에 불과해 전기 작가가 완벽한 전기를 쓰면 쓸수록 실제 인물과의 차이는 더 커지게 된다. 이후에는 강변 밖에 남지 않는데, 이를 전기 집필의 딜레마라고 말할 수 있겠다.’


김연화의 불륜적 사랑에 걸려있는 진위여부와 자칭 서혁민 동생이 가지고 나온 가짜 데드마스크, 갑자기 등장한 두 <오감도 시 제16호>의 진위여부. 피터주의 출생 등 진짜와 가짜를 뒤죽박죽 섞어놓으면서 진짜와 가짜의 구분에 대해서 말한다.


어차피 둘 다 진짜라고 확신할 수 없는 원고라면 좀더 정황이 진짜에 가까운 원고만이 살아남을 겁니다. 그게 바로 세상의 진실이라는 것이 제가 배운 교훈이었습니다. 이상 문학은 미친놈의 개소리이거나 불멸의 작품입니다. 1백퍼센트의 ‘미친놈의 개소리'나 1백퍼센트의 ‘불멸의 작품’은 없다는 말이죠.


피터 주가 김연화에게 건네받은 <오감도 시 제 16호>를 발표하게 될까. 그는 필연적인 행동을 할 것이다. 자신의 희미한 존재가, 자신의 삶이, 그리고 그가 발표한 <오감도 시 제 16호>가 거짓일지는 몰라도 가짜이긴 거부할테니.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는 것이죠. 보는 바에 따라서 그것은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이상 문학을 두고 최재서와 김문집이 각각 다르게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상과 관련해서는 열정이나 논리를 뛰어넘어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란 말입니다. 진짜라서 믿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진짜인 것이고 믿기 때문에 가짜인 것이죠… 다만 무한한 어떤 것 앞에서는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하지,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애매해진다는 말입니다.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거나, 이상을 좋아하거나 아니면 문학을 좋아한다면 추리소설만큼이나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김연수 작가의 맺음말도 매우 소설적이었다. 꿈에서 읽었던 수 많은 놀라운 소설들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 직접 쓴다는 그의 말이 인상깊었다. 앞으로도 나머지 김연수 꿈 속의 소설들을 빨리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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