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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제주] 이중섭 미술관


계획도 없이 무작정 올레시장에서 순대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이제 뭐할까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던 중 표지판에 이중섭 미술관이 있었다. 검색해보니 꽤나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시장에서 걸어서 내려갔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이중섭 거리에는 좌판을 펴고 있는 상인들과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이중섭을 알려주고 싶은 부모들과 미술관 앞 정원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전부였다. 조용한 미술관에서라면 정신없었을지 모르지만 이중섭 미술관에서는 잘 어울리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1층에는 이중섭의 친구들 혹은 그의 작품을 가지고 있던 분들이 기증한 이중섭의 작품 몇 점과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주고받았던 편지들이 있다. 그의 그림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실망을 할 수도 있을정도로 이중섭의 그림이 적지만 전시되어있지만 그 어떤 그림보다 이중섭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두 이중섭의 아내가 훗날 기증한 것들이다.) 읽어도 의미를 알 수 없는 일본어였지만 이중섭의 아내의 절박한 그리움, 편지지 귀퉁이마다 이중섭이 그려놓은 가족그림을 보면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가장의 씁쓸함과 아내의 것보다 결코 작지않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다.

아고리, 발가락군, 아스파라거스 애정이 듬뿍담긴 별명으로 서로를 지칭하는 편지과 답신, 잠깐의 만남과 긴 헤어짐 속에서 이 부부는 도대체 어떤 사랑과 생활을 했던 것일까. 한국이름으로 이남덕씨(이중섭의 부인)의 편지가 없었다면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미술관이 서귀포에 있었던 까닭은 그가 가족들과 몇 년 안되는 시간을 서귀포, 미술관 앞에 있는 초가집 구석 한 칸에서 같이 지냈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가난과 배고픔, 그리고 가족들은 현해탄 건너 일본에 있지만 만나러 갈 수 없는 철저한 고립과 외로움 속에서 이 비운의 천재화가는 신원미상의 시체로 병원에 남는다. 미술관에 전시된 편지를 순서대로 읽다보면 이중섭이 사망하기 몇달 전 이중섭의 아내가 답장이 없음을 걱정하고 더 자주 편지를 보낼 것을 재촉하는 편지가 놓여있다. 그 편지를 쓴 당시는 몰랐겠지만 그 편지를 쓴지 3달도 안되어 이중섭이 죽었다는 사실은 훗날 60년이 지난 우리의 눈에는 안타깝고 애절한 느낌마저 남는다. 

앞서 말했듯 가난 속에서 평생 살았던 그가 정작 죽고나서 위조된 그림까지 나돌정도로 그의 작품 가격이 올라 이중섭 미술관에는 그의 그림이 많지 않다. 30억이 넘는 그의 그림을 기증만으로 모으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이중섭 미술관 2층에는 이중섭의 그림 대신 다른 전시회를 기획하는 듯 했다. 내가 갔을 때는 서귀포의 젊은 작가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다양한 주제를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인상적인 그림 몇 점도 마주할 수 있었다. 그의 그림이 더 없어도 그가 생을 걸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던 것에 비추어보면 그의 미술관이 이렇게 새로운, 젊은 작가들에게 전시의 기회를 주며 운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서귀포 올레시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올레시장에서 아침을 먹었다면 아침 햇살과 약간은 서늘한 새벽의 공기를 마시면서 이중섭 미술관에 가보는 것도 기억에 남는 서귀포에서의 아침이 될 것이다. (현재 2016년 3월 8일부터 4월 30일까지 이중섭 화백의 미공개 편지 및 그와 관련된 글을 추가로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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