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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제주] 김영갑 갤러리

제주 여행 마지막날. 평대쪽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어나서 딱히 동선 짜기가 어려웠는데 '나 사진 좋아하잖아’ 라는 생각 하나로 김영갑 갤러리로 향했다. 많은 전시관들이 월요일에 휴무를 걸어두지만 운좋게도 김영갑 갤러리는 수요일 휴무이다.  
김영갑 작가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잡지에선가(아마도 군대에서 읽은 잡지 중 하나일 것이다. 군대는 요건만 잘 맞는 곳이라면 문화생활하기 참 좋은 곳이다.) 본 적이 있다. 제주에, 특히 오름에 남은 평생을 쏟은 작가. 그의 사진을 보고 싶었다. 그의 갤러리는 해안도로에서 조금은 벗어난 구석에 조용한 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인터넷을 살짝 검색해도 많은 정보가 나오기 때문에 그의 갤러리 사진은 올리지 않겠다.제주도에서 시간이 남는 여행객에게는 고즈넉한 갤러리에 한번쯤 들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추천해주고 싶다. 어떤 예술, 작업이라도 누군가의 한 인생을 고스란히 녹여냈다고 생각하면 그 결과물이 내 눈에, 내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경외감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평지에서 오름을 찍은 파노라마 사진들은 인상적이었다. 오름을 직접 찾아가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오름을 사진에 담는 건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다. 게다가 그는 오름이라는 제주의 지형만 담아낸 것이 아니다. 사라져가는 제주의 모습에 대한 감상이, 그의 의견이 담겨 있는 사진들이 많았다. 그가 사라져가는 제주의 모습에 대해 쓴 이야기는 꼭 읽어보기 바란다. 아마 그가 지금의 과열된 제주도를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제주의 자연 속에서 들려오는 포크레인 등 공사장비 소리에 놀랐다는 김영갑, 그가 떠난 갤러리 바깥으로 나오는데 포크레인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랬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제주의 영정 사진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갑 갤러리에서 그의 사진작업물뿐만 아니라 그가 작업하던 작업실을 바깥에서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들어놓았는데 그의 서재에 꽂힌 책들에 눈이 갔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책장을 보여줄 수 있을까. 누군가 나의 책장을 본다는 것은 나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 역시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김영갑이라는 사람을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사진가인 그에게 몸이 굳어가는 불치병은 너무나 잔혹한 병이었다. 그의 책장에 꽂힌 ‘사람을 살리는 생채식’이라는 책은 그의 생에 대한 의지가 엿보여 슬펐다. 또다른 책은 송시열의 입장에 관한 책이었다. 그 책을 보자 많은 이들이 조선을 무너뜨린 핵심적인 인물로 꼽는 송시열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한 쪽의 이야기만 듣고 그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 야박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책을 보자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지, 어떤 감정이 들었을지 제멋대로 추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아서면 마주할 수 있는 그의 사진은 그런 잡념을 무기한 유예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제주에서 사진을 찍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번에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몇 장 못찍었다. 제주에서는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빛뿐만 아니라 피사체와 카메라에 영향을 끼치는 바람까지도 고려해야한다. 그는 제주의 바람까지도 사랑했던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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