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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극장에 대한 잡생각

어릴 적 영화를 보러 나가는 것은 큰일이었다. 당연히 동네에 영화관은 없었고 미아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나가야 대지극장이라는 극장이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훗날 대지극장이 사라지고서야 그 대지극장이 오래된 역사와 많은 이들의 추억과 이야기를 담고 있던 극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많은 사람이 생각보다 자신이 처음 본 영화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는데 나는 도저히 내가 처음 본 영화 혹은 처음 본 거로 인식하고 있는 영화를 기억해내지 못한다. 어디까지를 영화라고 쳐야 하는 건지도 기준이 뚜렷하지도 않을뿐더러 잠깐 본 영화도 쳐주는 건지 그 어린 나이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영화를 쳐주는 건지는 몰라도 영 기억이 안 난다. 피아노 학원에서 봤던 지루할 정도로 길었던 아기 사슴 밤비?가 첫 영화였는지, 국산 SF의 쾌거라며 광고를 날리던 용가리를 처음으로 보러 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동네 무슨 센터에서 본 게 아니라 실제 극장을 가서 본 것은 미아에 있는 대지극장이 처음 가본 극장이라는 것이다. 


거대한 공간과 빽빽한 사람들만 기억에 남아있다. 영화를 볼 때면 꼭 들고 들어갔던 팝콘과 콜라는 지금도 먹는 것이라 추억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그 당시 추억이라고 하면 대지극장에서 나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봤다는 정도. 당시 미국과 영국에서도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부모들과 함께 해리포터 영화를 보러 가는 장면이 보이 후드에 나왔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추억이 떠올랐다. (물론 마법사 망토를 둘러매고 마법사 모자를 쓰고 요술지팡이를 들고 갔던 건 아니지만) 


요즘도 영화를 보러 자주 극장에 간다. 하루에 다른 극장에서 다른 영화를 2편 보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 영화관들이 추억에 남을 것 같지는 않다. 멀티플렉스으로 통일된 대한민국의 극장에 들어서면 같은 매표기기와 비슷한 영화타이틀이 걸려있고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인테리어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장이 단순히 영화를 보는 공간이라면 영화관, 멀티플렉스 산업은 10년 이내에 무너질 것이다. 집에서도 개봉하는 영화를 IPTV나 각종 서비스를 통해서 동시에 관람할 수 있고 빔프로젝터의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집에서 보는 것이 단순히 영화를 보는 행위라는 측면에서 더 효율적인고 편리할 것이다. 퇴근 후 잠들기 전에 빔프로젝트로 구글무비에서 할인하는 영화를 무선 블루투스 헤드셋을 끼고 조용히, 비매너 관람객들의 휴대폰 벨소리, 잡담, 전화통화 소리에서 벗어나 영화 자체에 더 몰입할 수도 있다. 지금도 충분히 실현되고 있는 이야기지만 아직도 극장 매출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영화관은 영화를 그냥 시청하러 가는 시청각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같은 영화를, 더 나아가 같은 영화와 그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 때문에 우리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 

주기적으로 한 번씩 극장이 영화표 가격을 올린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다면 그것도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다. CGV는 이번에 창조 경제적으로 좌석별로 영화표 가격 차등을 준다고 한다. 물론 영화관 입장에서는 잘 팔리는 위치의 좌석이 있고 잘 안 팔리는 위치의 좌석이 있지만 같은 공간에 앉아서 같은 영화를 각자 다른 각도로 보고 좌우 음향의 크기가 다르게 들린다는 점 때문에 가격을 차등을 주는 것은 합리적인 아이디어일지는 모르겠다. 조만간 학교 교실 좌석에서도 성적등수에 따른 좌석 배치 차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극장에서 적용되는 상식이 영화관 밖에서도 적용되지 않으라는 법은 없으니깐.

몇 년 전에 찾아간 CGV나 지금의 CGV나 바뀐 것은 상영 중인 영화 정도다. 좌석에 핸드폰 충전공간이 생기지도 않았고 바깥 좌석에 사람이 앉아있으면 안쪽으로 사람이 들어갈 때 서로 무릎충돌을 해야 하는 것도 똑같다. 적어도 변화는 주고 가격을 올리면 좋지않을까.
( 개인적으로는 3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를 보다가 화장실을 가면 화장실에서 작은 화면으로라도 영화를 이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다가 화장실을 간다는 것은 흐름 끊길 중대 각오가 필요하다.) 그냥 가격을 올리면 맞게 될 비난과 반응이 두려웠던 걸까 별별 꼼수 다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뭐, 다시 무를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겠지. 아직도 걸려있는 검사외전을 보면 CGV는 계속 이렇게 나아갈듯싶었다. 

어렸을 때 대지극장을 갈 때마다 영화를 보러 가는 설렘 같은 게 있었다. 물 건너 온 필름의 향연, 실제와 CG를 구별하기 힘든 놀라운 기술력,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 등을 영화 자체에 대한 기대뿐만 아니라 극장에 놀러 간다는 사실에 흥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멀티플렉스 꼭대기에 갇혀있는 극장이 그런 느낌을 줄 수 있을까. 미아에 있던 대지극장은 사라지고 미아CGV가 들어온지 벌써 한참 지났다. 극장인지도 모를 상가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극장이 있는 층까지 올라가면 땡하고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편리한 CGV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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