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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홍재목

홍재목을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크리스마스였다. 당시에 연애를 하고 있던 나는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해야할지 한달 전부터 고민에 빠져있었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린다 맥카트니의 사진전과 함께 크리스마스에 ‘사랑의 단상’이라는 음악회를 디뮤지엄에서 한다길래 냉큼 예약했다. 생각보다 좁은 공간에서 꾸깃꾸깃 앉아서 칵테일 한잔씩 들고 맨 앞자리, 스피커가 배치된 무대 바로 옆 바닥에 앉아서 공연을 관람했다. 캐스커를 비롯한 많은 뮤지션들의 공연이 만족스러웠지만 눈과 귀를 끈 뮤지션은 홍재목이었다. 당시 소개 멘트를 수줍게 이야기하면서 마이크를 잡아보지 않은듯한 느낌을 풍기기도 했고 ‘나는 말을 많이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게 보자마자 느껴지는 수줍음이 보였다. 기억이 흐릿하긴 하지만 홍재목은 자신이 다른 악기 세션에서 연주를 하다가 보컬로 넘어왔고 아직 앨범은 준비중이라는 멘트를 남겼던걸로 기억한다. 다음 대사를 입 밖으로 꺼내기 위해서 단어를 찾는건지 말할 주제를 찾는건지 머뭇거리는 그의 모습뿐만 아니라 마이크를 잡은 손과 목소리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떨림에서 이 무대가 그의 거의 첫 무대에 가까운 공연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노래를 부르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그의 음악적 실력과 무대 위에서 완성도에 관한 의심은 그가 마이크 대신 기타를 들면서 사라졌다. 떨림과 함께 마이크를 움켜지던 손은 그대로 기타의 5선 위에 올려져있었는데 연주와 보컬 모두 깔끔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프로가수들의 노래에서 느낄 수 있는 정확한 음정,박자와 그 나름대로의 권태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정말 인상적인 비공식 데뷔무대였다. 그 무대에서 들려준 ‘네가 고양이면 좋겠다’가 얼른 앨범으로 나오길 기대했다. 
시간이 지나 그가 새로운 곡 ‘그늘같은 늘같은’을 들고 나왔다. 그 노래 또한 참 그다운 노래였다. 항상 그렇듯 나만 알고 있는 것들에 애착이 더 가는 법이다. 나만 알고 있는 골목길 맛집, 나만 알고 있는 조용한 극장, 나만 알고 있는 아기자기한 카페, 나만 알고 있는 가수. 
그런것들이 분명 나중에 유명세를 얻어 더이상 예전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지 못할 때 애착이 미련과 슬픔으로 변한다. 그런점에서 나만 알고 있는 좋은 곡은 훗날 유명해진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심이 된다. 그리고 홍재목의 노래를 더 듣기위해서라도, 혹은 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라면 그가 좀 유명해지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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