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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 나라 없는 나라


역사에 관한 서적을 읽다보면 이상하게도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까지 이어지는 조선 후기 혼돈의 정세가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의 실정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이 떠오른다. 우리는 교과서에 실려야할 자랑스러운 역사뿐만 아니라 패배의 역사를 더 집중해서 배워야 반복되는 실패와 아픔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 없는 나라는 그런 점에서 120년 전 조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바뀐건 사용하는 단어, 세상의 외형정도일 것이다. 여전히 소설 속 동학군의 전쟁은 끝나지 않은 채 이 나라 이곳저곳에서 이어지고 있는듯하다.

이 소설은 동학농민운동을 혁명의 위치까지 끌어올려 기존의 세상이 아닌 양반과 상이 나뉘지 않는 평등한 세상, 민주적인 세상을 꿈꾸는 자들의 몸부림으로 묘사하고 있다. 동시에 옴니버스식 여러 인물들 이야기의 진행과 교차로, 스토리의 몰입감을 가져다준다. 당시의 현장감을 고스란히 살려주는 옛스런 문체와 인물들의 말투로 하여금 독자가 읽기는 어려우나 그들의 갈등과 감정에 대한 이해는 좀 더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게다가 작가는 전봉준 평전을 썼던 인물인만큼 전봉준이라는 인물과 사건 뿐만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와 조사를 선행하였다.

“과연 그렇겠지요. 그러나 나는 죽을 것이로되 순상께서는 왜의 주구가 되어 살아갈 것이니 제가 위로를 드려야겠습니다.”….

“나라에서 임명한 한 지역의 수장으로 나의 선택은 쉽지 않았소. 언제나 두려웠고 언제나 고독하였소.그대 또한 그랬겠지요? 어쩐지 내 삶의 전부는 이곳에 남아 있을 성싶소. 이 잔 비우고 잘 가오."

소설 속 전라도 감영의 감사로 등장해 전봉준과 동학군을 어느정도 인정해주는 인물로 등장하는 김학진은 을사조약 체결 무렵 반일 상소를 올리는 등 척화파, 수구파로서의 면모를 보였지만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당시에는 일본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고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도 포함됐다. 그야말로 자신의 신념을 이중사고를 통해 분쇄하고 왜의 주구가 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조소를 전봉준을 통해 표현한다. 그리고 작가는 마치 지금의 독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듯 전봉준의 입을 통해 꿈꾸는 세상을 말한다.

“난 지금 이번 일 하나를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오.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대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이며 보국안민은 대체 무엇이냐고. 머리에 든 몇 가지 지식을 말로 꾸며 말할 수 있겠지요. 개화당의 장점이며, 기존 왕조의 본받을 만한 일이며, 우리가 향리에서 몸소 느껴온 미풍양속도 있고. 그러나 그것은 말이지 실재가 아니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오직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행동으로부터 도달하려는 세상의 품격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세상을 불신하고 두려워하게 하면 승산이 없습니다. 우리가 서슬 푸른 날을 준비한 것은 베기 위함보다도 짓기 위함에 있소."

인물뿐만 아니라 작가가 소설 속 등장하는 실제 지리에 대한 조사가 충분한 덕인지 실감나는 지형의 묘사는 압권이다.
특히 지형이 중요한 전쟁의 장면이나 인물들의 감정 묘사를 함에 있어서도 산과 고개를 주로 사용해 소설의 맛을 살렸다.

아무도 기억되지 못할 사람들의 투쟁은 언제나 가슴아프다.
이 땅에 세워진 국가의 존망이 흔들릴 때마다 들고 일어난 모든 사람들의 비애다.
화승총으로 현대식 무기와 맞서 승산이 없는 전쟁을 치뤘던 농민군은
어떤 각오와 생각으로 전쟁에 임했을지 나로선 상상이 가지 않는다.

전봉준이 바람에 흩날리며 이야기 하던 “후세가 기억할 것이다. 다음세상의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줄 것이다.”의 그 후세가,
그 다음 세상이 지금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뉴스를 틀다보면 한 숨이 나오는 모든 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뿐만 아니라 비극적이고 패배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임을 직시할 수 있는 이들에게
이야기 속에서 현재와의 어떤 유사점을 배울 수 있도록 이 책을 추천한다.
끝으로 소설 뒤에 있는 작가의 말도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이 소설은 위험하게 사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이 안전하지 않은데 개인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나만 안전하기를 바라는 일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안락을 꿈꾸지만 당장은 안전해 보여도 제도화된 위태로움으로부터 조만간에는 포위될 게 뻔하다. 단언컨대, 세상은 지금 안전하지 않다. 사람, 산과 강, 저녁거리, 지역, 국가 모두가 위태롭다.

그러니 어떻게 할까?

이 소설은 이 질문과 무고나하지 않다. 위험을 감수한 자들이 이룩한 공적 가치가 안전을 추구한 사람들의 그것보다 큰 게 아닐까,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서양의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지금보다 위험하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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