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ssay

아픈, 참사의 기억

지난주 토요일, 강원도 정선에서 워크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각 잠을 잔 덕분에 자주 깨고, 이상하고 불안한 꿈을 꾸면서 깨길 반복했다. 그러다 저녁 11시 반, 아내가 갑자기 깨웠다. 이태원에서 큰 사고가 나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몽사몽한 눈을 비비며 뉴스를 봤다.

돌이켜보면 이제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사고들이 10년에 한 번씩은 발생하고 있다. 가깝게는 이태원 참사와 같은 시기에 아직도 구출하지 못한 ‘봉화군 광산 매몰 사고’, 올해 초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광주 아이파크 붕괴 사고’, 10년 전 전국민을 멍하게 만들었던 세월호 사고, 30년 전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까지. 이번에도 사고는 이전과 같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우리의 부주의와 안전불감증 아래 납작히 몸을 숨기고 있다가 튀어나왔다. 돌이켜보면 아차!했던 그 모든 것들이, 애써 묵인하고 고개를 돌렸던 모든 순간들이 단 한 푼도 빠지지 않고 모아놓은 꽉 찬 저금통처럼 조금씩 우리를 가짜 안심으로 채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조금 불편하고, 조금 느리고, 조금 돌아갔더라면 피할 수 있는 사고가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은 이제부터 범인 찾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라도 원망하고, 욕하고, 탓하면서. 이 사건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지목된 한 명의 범인을 징계함으로서 ‘내’가 다시 안전해지는 기분을 원한다. 하지만 범인은 한 명이 아니다. 이태원 할로윈 대책회의에 참석안한 용산구청장, 경찰 인력을 더 늘렸어도 사고는 일어났을 거라고 주장하는 행안부장관, 평소와 다르게 400건의 신고에도 움직이지 않은 경찰, CCTV로 현장을 보고 있으면서 어떤 조취도 없었던 사람들, 인파에 밀려 가게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내쫓은 가게 가드와 그 좁은 곳에서도 자신의 장사를 방해하지 말라며 구출을 방해한 사람들, 꼼수로 가벽 증축을 해서 영업 중이던 가게까지. 아마도 우리가 뉴스에서 보게 될 범인은 이 참사의 가장 마지막에 임계점을 넘기게 만든 사람. 한 명만 카메라 앞에, 법정에 세워질 것이다. 하지만 참사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그 모든 것들을 잊지 않고 또렷하게 기억해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불안’과 ‘걱정’없이 일상 속에서 다시 길을 걸을 수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모든 희생자 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