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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1년 간 지루성 피부염 후기

지루성 피부염의 시작

지난 겨울 초입이었다. 입술이 막 건조해지면서 갈라지기 시작했다. 건조한 건 가끔씩 있어왔어도 이렇게까지 심한 적은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일년 내내 쓰고 있어서 그런건가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내 몸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것 같다. 입술 전체에 피나고 고름과 염증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밥을 먹기가 힘들정도가 됐다. 마스크 때문에 이런 증상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스크 덕분에 가리고 다닐 수 있었다. 원망과 고마움이 동시에 걸려있었다. 대신 사람들 앞에서 마스크를 벗기도 어려웠고 밥을 먹긴 더 어려웠다. 병원에 갔더니 스트레스 성으로 생기는 것 같다면서 항생제 주사를 한 대 놔주고는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약을 꾸준히 먹고 거의 3주가 걸려서 많이 회복이 됐다. 나아졌어도 여전히 남들 앞에서 마스크를 벗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염증이나 피고름이 나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마스크를 벗기 전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다. 애초에 사람들 앞에서 마스크를 벗는 일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당연히 회사동료나 친구들과의 관계는 소홀해질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라는 좋은 핑계거리가 또다시 나의 병을 감춰주었다. 12월 말이 되자 입 주변에서 발생하던 병은 사라졌다. 그렇게 모든게 끝난 줄만 알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얼굴이 심하게 당기기 시작하더니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겨울이라 히터 때문에 그런가 싶었는데 얼굴이 점점 빨갛게 변하는게 느껴지고, 눈으로도 보였다. 회사에서 고객들을 만나면 낮잠 자다가 온줄 알았다고 말할 만큼 이마가 시뻘겋게 변하고 있었다. 원래의 피부 색은 완전히 사라지고 빨갛게 변해버린 피부만 남아있었다. 그러면서 이마에 각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때도 이게 무슨 병인줄 몰랐다. 각질이 많이 생겨서 필링젤을 이용해 각질을 제거도 해보았지만 더 빨갛게 변하고 그 부위도 더 넓어졌다. 이제는 이마 뿐만 아니라 미간까지 내려왔고 이마의 빨간 영역도 더 넓어졌다. 그러다가 입 주변도 빨간 색으로 변하고 각질이 생기면서 사람들 앞에 도저히 얼굴을 내밀 수 없게 되었다. 각질과 빨간피부로 변한 부위는 주름이 마구 생겼다. 피부의 ‘비닐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첫 번째, 대학병원

대학병원을 갔는데 마침 주말이라서 레지던트가 진료를 보고 있었다. 일단 나이도 나랑 비슷하지만, 다양한 피부 질환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는 의사에게 ‘지루성 피부염’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치료는 불가하고 계속 관리를 해줘야하는 병이라는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에게 듣는 병명은, 마치 재판장에서 들려오는 선고와 다름이 없었다. 평생 치료할 수 없다는 그 ‘불치’라는 단어는 의욕이 사라지게 만든다. 처방전에 쓰여진 약은 향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 연고제였다. 약국을 나오는데 약사가 이거 얼굴에 바르는건 아니죠?라고 물어본 덕분인지, 아니면 내 의심병 때문인지 연고제 이름을 검색해보니 스테로이드 연고제로는 증상을 완화는 할 수 있지만 절대 치료제가 아니며 보통은 쓰면 부작용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 뒤 향히스타민제는 먹었지만 연고제는 바르지 않고 보관만 했다. 그렇게 향히스타민제를 2주 가까이 먹었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이 때부터 ‘빨간얼굴’이라는 네이버 카페를 통해서 스테로이드 연고제의 무서움과 다양한 증상 및 관리 방법에 대해서 접했다. 그 이후에는 어떤 병이 생기더라도 네이버 카페부터 찾아본다.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모여서 아직 시도해보지 못한 방법이나 경험까지도 공유하기 때문에 투병?생활을 하는 입장에서는 무척 소중한 소통의 장이었다.

두 번째, 피부 전문 한의원

일반 피부과나 대학병원에서는 더는 희망이 보이지 않아, 희망을 주는 한의원으로 향했다. 나름 신촌에서 피부관리로 유명한 한의원이었다. 상담비만 해도 2, 3만원 수준이다. 보자마자 지루성 피부염인걸 알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결론은 한의원에서 ‘해독필’이라는 치료를 통해 해당 부분을 오존으로 소독하고 일부러 상처를 내어 회복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평소에 한의학을 별로 믿진 않지만, 이 방법은 더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학 병원에서 ‘불치’의 판정을 받은 사람이 무엇을 못 믿을까?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아주 작은 희망 하나로 8주간 1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치료를 받았다. 해독필 내용은 별게 없었다. 세수를 시켜주고, 오존 소독약을 바르고, 가끔은 날까로운 장갑같은 걸 끼고 문제 부위를 세게 문지른다. 이런 치료를 받고 나니 병원에서 나올 때는 얼굴이 엄청나게 빨갛게 변했다가 집에서 시간이 지나면 색이 울긋불긋하게 변한다. 이런 과정을 3달 가까이 받고 나니 조금은 나아진 것 같기도, 아니면 그대로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의원에서는 마지막 치료에 가까워질수록 ‘지루성 피부염’이 나아지고 있는지가 아니라 다른 치료 추가에만 관심이 있어보였다. 10주 가까이 치료를 받다보니 증상이 조금은 나아졌다고 해도 이게 정말 치료 때문에 나아지는 건지, 아니면 내가 피부관리를 해서 그런건지, 계절이 겨울에서 여름을 향해가고 있어서인지, 치료를 받는다는 플라시보 때문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세 번째, 인내의 시간

한의원에 100만원을 쏟고도 큰 차도를 느끼지 못했다. 여전히 얼굴 곳곳은 울긋불긋하고, 집에서 나간지 4시간이 지나면 동일한 위치에 각질이 무서울 정도로 올라오고 가끔씩 가렵기도 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나라는 답답함과 정말 평생 이렇게 살아야하는 건지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코로나19로 마스크 쓰고 있는 이때 걸려서 차라리 다행이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얼굴 피부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꽤나 큰 일이다. 그런 문제를 겪지 않은 사람들은 애초에 상상도 해보지 않았겠지만, 남들이 나를 보고 ‘인지’할 수 있는 첫 번째 표면이 얼굴이다. ‘face’라는 단어가 얼굴이라는 명사 이외에도 ‘마주치다’라는 동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얼굴이란 타인에게 나를 들어내는 첫 번째 껍데기임은 전세계 공통이다. 그런데 ‘그’ 얼굴에 문제가 생기면 얼굴을 들기도 힘들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힘들어진다. 가장 힘든 건 사람들끼리 밥을 먹는 자리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과 밥을 먹는 자리는 거의 없어졌지만, 같이 외근을 가면 같이 식사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자리를 피할 수가 없다. 밥을 먹다보면 입술 아래부터 입술 옆까지 하얗게 작은 각질들이 올라온다. 밥 먹기 전까지는 분명 멀쩡했어도, 항상 신경쓰고 있지 않으면 미간과 T존까지 하얗게 핀 각질을 ‘누군가’에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스스로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남들이 괜찮다고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피부 때문에 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필 이 기간동안 회사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녀야했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밥을 먹기 전에, 밥을 먹고난 후에. 꼭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봤다. 얼굴은 얼마나 빨개졌는지, 각질은 생기지 않았는지.

네 번째, 그리고 진행 중

여름에는 지루성 피부염이 더 심해진다고 한다. 피지가 많아지고 그러면 염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증상가 원인이 다르듯, 나는 오히려 여름에 지루성 피부염이 덜해졌다. 없어진 것은 아니고 조금 나아진 것이다. 바깥 온도도 올라가고 전체적으로 습해진 덕분일까 피부가 붉어지거나 각질이 생기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거의 다 나았다는 착각과 함께 피부에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여지없이 또 붉어지고 각질이 생긴다. 어쩌면 이 피부병을 나는 정말 ‘불치’의 상태로 평생 가져가야할 수도 있다. 평생 관리를 하는 병처럼. 이제는 병도 구독제처럼 다달이 돈을 쓰고 관리를 해줘야하는 만성 질병이 많아진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번째, 1년이 지나 다시 돌아온 발병의 계절. 가을.

지루성 피부염이 생긴지 벌써 1년이 다되간다. 11월에 처음 생기기 시작했으니 아직 1년을 다 채우려면 1달은 남았지만 각질이 올라오는 경우는 흔치않고, 얌전히 있으면 피부도 빨갛게 변하지 않는다. 물론 T존 쪽은 착색 비슷하게 어두운 피부톤이지만 각질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지금도 음식을 조금만 잘못 먹거나, 체력적으로 너무 무리할 경우 문제가 있던 부분이 빨갛게 변한다. 그 이외의 대부분의 일상에서, 1년 전 평화로움을 다시 찾았다. ‘빨간 얼굴’카페에 보면 몇 년간 고생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나는 정말 다행인 편이다. 동시에 재발을 겪는 분들도 카페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에 관리나 관심을 아예 접어두지는 않을 계획이다. 이전보다 더 신경쓰는 부분이 생겼다. 비타민과 유산균(락토핏)을 매일 꼭 챙겨먹는다. 편한 운전 대신에 불편한 버스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 아무래도 걷거나 서있는 시간이 매우 적다. 운동 겸 2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기회가 되는대로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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