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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떠나간 정치인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삼성을 말한다'라는 책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삼성을 말한다'는 아마 내 가치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준 충격적인 책이었다. 국내 최고의 대기업이라는 삼성이 가지고 있는 많은 부조리, 불법들을 상세히 고발하는 책이다. 이 책이 담은 내용은 삼성가의 존재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보다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난 뒤 이 사건이 현재에는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검색해보았을 때, 내가 살던 지역구에서 노회찬이라는 사람이 왜 의원직을 상실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사건 때문에 노회찬이 일반인으로 세상에 나왔지만, 그가 꿈꾸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서라면 의원직도 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깊게 남았다. 국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걸고 삼성의 부조리를 고발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아마 지금의 국회에는 없을 지 모른다.

올해 우리는 친근한 웃음과 말투를 가진 한 정치인을 잃었다. '노유진의 정치카페' 팟캐스트를 오랫동안 들었던 애청자로서 그를 잃은 상실감은 완전한 한 문장으로는 표현하기 힘들다. 항상 쉽고 유쾌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그의 비유 화법은 지금도 인터넷에서 회상될 만큼 독보적인 그의 영역이었다. 특히 진보 성향의 정치인들이 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지르는데 반해 그는 부드러운 톤과 입가에 미소를 띠며 날리는 촌철살인이 있었기에 더 친근하게, 인간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의원직을 잃었을 때도 끝까지 싸우던 그는 드루킹 특검에서 나온 의혹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많은 국회의원들은 사회의 물의를 빚거나, 사고를 쳐도 조용하게 지내면서 자신의 안위를 챙긴다. 그렇게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청문회에서 적폐를 옹호하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아직도 무탈하게 지내고 있으며,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은 당대표 자리에서 내려온 뒤 조용하게 재기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성완종 사건에 연루된 홍준표 전 경남지사이자 자유한국당 전 대표는 대선 후보로까지 나왔었다.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뻔뻔하게 일관하면서 시간을 끌면 언젠가는 다른 이슈에 묻혀 잊혀질 것을 알고 있고 또, 많은 정치인들이 지금까지도 그러고 있다. 하지만 노회찬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만큼 뻔뻔하지 못했던 걸까, 자신을 믿었던 사람들의 기대감을 저버린다는 사실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자신의 인생을 쏟은 정치인생에서 또다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을까.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이 떠나갔다는 사실도 슬프지만, 부끄러움을 모르고 뻔뻔한 사람들만 살아남는 현실이 더 슬프다. 대학부터 자신의 모든 경력이 위조된 저축은행 회장 ,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지 강의하지만 정작 본인은 논문 표절을 한 사람, 조작된 실험과 논문으로 사람들의 희망을 좌절로 바꾸어 놓은 과학자, 그 모든 이들이 뻔뻔하게도 잘 살아간다. 어디에도 명시되어있지 않은 자숙이라는 침묵의 시간을 치루고 나면 자신이 있던 원래의 자리를 찾아간다.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라고 외쳤던 한 정치인이 생각난다. 결국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만 떠나고 우리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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