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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Essay] 북미 정상회담 취소

취임 후 1년 동안 이렇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 대통령이 있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열린 장미 대선으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70%가 넘는다. 최근 여러 위기 속에서도 그러한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저번달에 열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덕분이었다. 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온 종전선언과 여러가지 다리 산책을 포함한 양측의 쇼맨십 덕분에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대통령과 정부를 지지했고 또 그 성과과 곧 열릴 것으로 예상했다. 건설주가 뜨고, 금방이라도 유럽까지 기차가 연결될 것 같은 이야기로 현대로템의 주가만 올랐다. 심지어 그동안 금기시 되어온 통일이라는 단어도 언론 헤드라인에 등장할 정도였으니 지난 한 달의 그 축제 같던 분위기가 얼마나 요란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종전 선언과 평화로 가는 길을 기대했는지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볼턴이 북한과의 대화를 ‘리비아식’으로 여긴다는 이야기에 북한의 반응은 무서울 정도로 돌변했다. 많은 이들이 가장 걱정했던 또다시 북한이 뒤돌아서는 상황이 일어났다. 그 원인이 무엇일지라도 결국 표면상 누가보아도 북한이 먼저 등을 돌린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북한이 회담을 열렬히 원하고 미국이 선수쳐 북미회담을 취소한 것이라고 하여도, 미디어에서 비추는 모습만 보는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또다시 북한의 위장전술에 속았다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으며, 어렵게 올려놓은 신뢰의 탑을 무너뜨리다 못해 불신의 벽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가장 큰 문제는 신뢰가 채 단단해지기도 전에 무너지고 다시금 불신 가득한 눈빛으로 북한을 쳐다봐야하는 것이다.

2018년 5월 24일 한국시간으로 오후 11시경,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을 마치고 국내에 발을 딛은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서면으로 싱가폴에서 열리는 북미회담 취소를 알려왔다. 전문을 직접 읽어보았지만 희망적인 부분은 찾기 어려웠다. 정확히 북한의 최선희 성명에 대응하는 트럼프의 서면이었다. 최선희가 핵전쟁을 운운하니 자신들의 핵이 더 많고 강력하고(massive, powerful) 사용하지 않길 신에게 빌어야한다고까지 언급했다. 아무리 막말의 대가 트럼프라고 해도 외교적 서면에서 이 정도 수위로 표현된 적이 유사이래로 있을까 싶을 정도다. 바로 다음 줄에는 미국인 3명의 석방을 감사한다는 표현을 통해, 사실상 미국이 이번 평화무드 조성과 남북미 접촉에 있어서 미국은 잃은 게 없고 오히려 얻은 것만 있음을 과시하는 듯 보인다. 동시에 바로 몇 시간 전에 끝난 풍계리 핵실험장 폭발이 있었기에 이 문장을 읽는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완벽한 협상 패배와 자신들이 쓸 수 있는 모든 협상카드 날려버린 것에 대하여 트럼프가 조롱하는 것으로 밖에 읽히지 않을 것이다.

12시 넘어가기 전 문대통령은 NSC 비상소집을 실시했다. 이번 한미 회담이 별 성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회담 취소가 될 줄은 예상도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로 문 대통령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이 있을까. 한반도 평화 운전자론을 설파해왔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김정은이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미국에게 조아리지 않는 한, 방법이 없어보인다. 북한도, 결국은 김정은이 자신이 유리한 외교적 입지를 다지기 위하여 남북정상회담을 한 것이라면 남북미 평화보다는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보강하는데 좋은 기회가 됐을지도 모르곘다. 특히 국내 정치상황을 둘러보면,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두고 있는 지금, 드루킹 특검, 강원랜드 취업 청탁 관련 검찰 내부 소란, 정제계에 지속적으로 터지는 여러 문제들까지 문재인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그는 이번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까?

홍준표 한국당 대표와 많은 보수 정치인, 보수 언론에서는 남북정상회담 관련 비난을 하기만 하면 온갖 국민들의 비판을 받아왔기에 이번 남북 평화 모드에 대한 논평을 삼가해왔었다. 아마 내일이면 잔치가 벌어진 것 처럼, ‘그럴 줄 알았다’, ‘또 속았다’, ‘세 번 속으면 공범이다.’ 라는 프레임으로 현정부와 대통령 뿐만 아니라, 향후 북한과의 대화 시도 자체를 비난하고 다시 거센 북풍몰이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많이 아쉽다. 정말 아쉽다.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한 이 소중한 평화가 사실은 자기 기분대로 움직이는 기분판 지도자 두 명에게 달려있었다는게 만천하에 들어나고 말았다. 앞으로 상황에 대해 낙관할 거리가 없다. 앞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2달 전 외교 전문가들은 1달 전을 남북정상회담을 예상하지 못했고, 모두가 감동에 빠진 1달 전 그 때의 전문가들은 지금 이 순간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예측이 불가능한 두 명의 시한폭탄과 함께 한반도에서 살아나가야 하니. 우리도 북한에 대해서 멧집 좀 키워둘 필요가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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