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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재와 빨강 - 소각장으로 향하는 쓰레기 더미 속 쥐약 먹은 쥐

"살충제든 덫이든 결국은 막내뻘인 자기가 나서서 잡아야 할 거였다. 쥐 역시 무리 중 막내일 게 뻔했다. 제 집 근처에서 벌어지는 먹이싸움에서 밀려 낯선 곳까지 나온것일터였다. 쥐와 그는 서로의 곤란한 심정을 헤아린 듯 묵묵히 마주 보았다. "
편혜영 , 『재와 빨강』 ,경기 : 창비 , 2010 , Crema Carta eBook Reader, P44-45

어렸을 적 쥐를 잡아본 적이 있는가? 혹은 쥐를 실제로 마주친 적은?
집 마당에서 가끔 쥐가 나온 적이 있었다. 마당에 심어진 대추나무 열매에서 나는 단내 때문인지. 벽과 계단 밑의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오곤 했다. 아마 쥐와 인간이 친했다면 우리는 쥐와의 합의를 통해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보장해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대화가 통하지 않아 가끔 마주치곤 했다. 덫에 걸린 쥐는 그 고통 때문인지, 목표로 삼았던 먹을 것을 먹지 못해서인지, 움직일 수 없어서인지, 집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인지 하염없이 높은 주파수의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어떤 것 때문인지 말이 통하지 않아서 물어볼 수도 없었고, 쥐의 울부짖음 속에서 어릴 때 봤던 톰과 제리의 제리가 생각나서인지, 전쟁에서 가족이 그리워 참호 속에서 울부짖는 전쟁영화를 봐서인지 그 쥐가 애처로우면서도 참 사람 같다는 생각을 제멋대로 해버렸다.
 소설에서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자 소재의 이야기는 늘 흥미로운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현대인의 수동적인 삶과 그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 무기력한 주인공을 내세우는 것도 자주 보이는 주인공 설정이다. 길거리에서 쓸만한 물건을 들고 있으면 뒤통수를 쳐 물건을 빼앗는 혼란스러운 상황은 많은 액션, 스릴러 장르의 배경이 되고는 한다. 쓰레기로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세기말적 디스토피아도 어둑침침한 배경으로 자주 쓰이곤 한다. 편혜영의 재와 빨강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이 소설 속 세계는 이것들이 타이트하게 엮여진 양탄자라기보다는 엉성하게 띄엄띄엄 엮인 느낌이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설정이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우리의 삶과 현대의 삶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설은 3장으로 구성되어있다. 1장은 주인공이 C국에 입국해서 겪은 매우 부자연스럽지만, 주인공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이야기이다. 또 본국에서 어떤 이유로 자신이 C국에 오게 되었는지 덤덤하게 서술한다. 억울하거나 화내거나 짜증 낼 만도 하지만 너무나도 무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C국의 세계에 적셔 들어간다.

"세계가 담긴 것처럼 무거웠던 트렁크는 단지 무게가 나가는 하찮은 물건들의 집합에 불과했다. 당장 갈아입을 옷이 없어 불편하겠지만, 다행히 잃어버린 것들은 C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모국어 책이 없어진 게 다소 유감이지만 공부할 셈으로 C국의 책을 천천히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러니까 돈만 있으면 언제든 구할 수 있는 것들을 담아오느라 트렁크가 그처럼 무거웠던 것이다."
편혜영 , 『재와 빨강』 ,경기 : 창비 , 2010 , Crema Carta eBook Reader, P59

마치 트렁크를 '그'로 바꾸고 트렁크 속 물건을 기존의 사고와 행동으로 대체해도 수긍이 가는 문장이다. 그는 생존을 위해서는 고국에서 가져온 '자신' 그 자체에 대해 별 필요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그는 아무 불만 없이 이제까지 살아온 자신을 하찮은 물건처럼 문밖에 내버려두고 새로운 세계에 적응한다. 단순히 현대사회의 물질문명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현대인들에 대한 비판일까? 그러기엔 자신을 내려놓아 다소 유감이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게 유일한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이 가벼워 보이다 못해 야생 세계로 진입을 선택하는 듯싶다. 아내와의 여행에서 원숭이 숲에 들어가자고 우겼듯.

" 자기 것이라고 해도 그 속에 모국에서 넣어온 물건들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가망없는 일이었다. 트렁크는 이미 여느 쓰레기와 다름없어졌을 것이다. 그가 단 며칠 만에 도시의 오래된 부랑자들과 같아진 것처럼."
편혜영 , 『재와 빨강』 ,경기 : 창비 , 2010 , Crema Carta eBook Reader, P169

"사내에게 얻어맞은 순간, 그는 자신이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세계에 들어섰음을, 도덕과 질서와 교양과 친절이 정당한 세계에서 약탈과 노략질과 폭력과 쓰레기가 정당한 세계로 진입했음을 깨달았다. 새로운 세계에서의 생존방식은 그를 가격한 사내의 방식일 거였다. 약탈과 노략질이 생계의 방편이라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게 유일한 자산이었다."
편혜영 , 『재와 빨강』 ,경기 : 창비 , 2010 , Crema Carta eBook Reader, P79-80

원숭이 숲에서 만난 다른 외국인들은 더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 웃고 있을 수 있었다. 주인공인 '그'도 C국이 마치 원숭이 숲인 것 마냥, 당시에는 원숭이 꼬리를 물 정도로 지켜야 할게 있었다면, C국에서는 트렁크도, 여권도, 부인도 없으니 지킬 것이 없었다. 버려진 트렁크 속에서 자신이 가져온 무언가를 찾지만 죽어있는 쥐 한 마리만 발견한다. 그를 C국으로 보낸 원인이 자신의 트렁크 속에 갇혀있었다니 아이러니다.

2장에서 그는 녹물이라도 나오던 아파트로부터 탈출해 트렁크 속 물건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아파트 속 생활도 잃어버린다. 빈 공원 벤치에서 생활하면서 쓰레기장을 뒤져 먹을 것과 물건들을 챙긴다. 그는 더는 남의 시선도, 자신에게 나는 쓰레기 냄새도, 구역질 나는 음식물 쓰레기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유독 '공원의 사람들'은 전염병에 대해서 민감하게 생각한다. 실체도 감염자도 확인할 수 없는 소문만으로 이미 충분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와 공원의 무리는 2번을 소각장에 내던진다.

"그는 소각장에 던져넣은 2번의 얼굴을 몰랐다. 2번과 애기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타고 있는 연기를 흡입하고 있었다."
편혜영 , 『재와 빨강』 ,경기 : 창비 , 2010 , Crema Carta eBook Reader, P211

그리고 2번과 접촉했던 '그'도 소각장에 버려지고 하수구를 따라 지하 세계로 들어간다. 우연히 잡게 된 쥐를 잡으면서 하수구에서 생활한다. 개인적인 배변을 공개적으로 흐르는 검은 하수에 해결하고 그 옆에 누워서 지내는 이 지하세계에서 ‘그'는 다시 쥐를 잡기 시작한다.

“그들은, 죽은 사람은 더럽고 불결한 세균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정작 해를 가하는 것은 산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죽은 것들을 방치하는 일에는 비교적 관대했다. 그게 무엇이든, 내장이 터져 죽은 쥐라고 해도, 죽은 것은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
편혜영 , 『재와 빨강』 ,경기 : 창비 , 2010 , Crema Carta eBook Reader, P250

그곳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던 노인에 의해서 방역대원들에게 끌려간다. 또다시 쥐로 인해서 그는 임시방역대원이라는 새로운 처지에 처한다. 하지만 이전까지 맨몸으로 세상에 노출되던 것과 달리 이제는 그가, 혹은 C국의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방역복을 입게 된다. 물론 인조 솜으로 대충 만든 저급한 방역복이지만 이미 방역복은 안전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방역복을 입었다는 것은 남들과 똑같은 존재가 된다는 의미였다. 남들과 같아진다는 것은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또한 감염되어 일상이 다치는 것 말고는 두려울 게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혜영 , 『재와 빨강』 ,경기 : 창비 , 2010 , Crema Carta eBook Reader, P274

3장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나오지 않지만 ‘그'가 쥐 잡는 방역대원으로서 익숙해진 삶이 나온다. 이제는 언어도 곧잘 하는 듯 싶다. C국에 잘 흡수되었다. C국의 전염병은 잦아들었고 쓰레기가 넘치던 제4구도 말끔하게 정리됐다. 그리고 방역대원으로서 다시 처음 C국에 왔을 때 머물렀던 아파트와 공원을 찾아간다. 이제는 사라진 공원 위에 마트가 생겼다. 그는 여전히 모국으로 대상 없는 전화를 건다. 소재를 알 수 없는 유진이다. 죽은 전처, 사라진 자신을 찾는 전화를 거는 행위를 통해서 그는 표백제로 지워진 듯한 자신의 존재감에 관해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매번 일을 하다말고 혹은 일을 마치자마자 전화부스로 달려가는 그에게 후배가 공중전화라는 별명을 붙여준었다. 그는 그 별명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는 순전히 발음의 유사성으로 공중을 허공의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자신은 허공에 뜬 존재나 다름없었다."
편혜영 , 『재와 빨강』 ,경기 : 창비 , 2010 , Crema Carta eBook Reader, P331

쥐가 무서울 정도의 번식력으로 번식을 반복하여 개체를 생존시킨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우리를 생존시키는가? 소설 속 ‘그’는 자신을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과거의 기억을 반복함으로써 또 그 기억이 마치 사실이었던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전화기를 드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이라는 개체를 생존시킨다. 소설 전체를 뒤덮고 있는 그의 과거에 대한 회상은 아내에 대한 기억, 회사에 대한 기억, 그리고 과거의 사소한 현실로 돌아갈 수 없는 현재 자신의 모습에 슬퍼한다. 그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왜일까? 그는 돈을 모아 고국으로 수출될 수 있을까? 국가 간의 물리적 거리이기 때문일까, 자신이 아내를 죽였기에 고국에 돌아갈 수 없는 것일까?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두 명의 정체를 미처 밝혀내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살아간다. 

3장 전체에 있어서 공용되는 장치들이 존재한다. 바로 C국의 본사에 찾아가는 장면과 과거를 끊임없이 회상하는 장면, 그리고 쥐와 쓰레기, 그리고 이름없는 인물들이다. 이야기 전개의 대부분 배경이 되는 C국은 언제나 뿌연 소독연기와 알 수 없는 전염병 확산의 공포가 만연해 C국 사회를 좀먹어간다. 개인의 삶에 전혀 관심이 있지 않은 회사는 오직 성과를 내기 위해서만 달려간다. 어디서 많이 본 환경이다. C국은 어느 나라도 될 수 있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부분이다. 몰을 제외하면 ‘그’의 파견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없었고 회사가 ‘그’를 파견 보냈지만 오히려 회사가 그의 존재를 철저히 지워버린다. 쥐와 쓰레기와 전염병은 어떠한가? 쥐는 전염병의 원인이라 지목당하고 쥐는 쓰레기가 많은 곳에 존재한다. 회사와 그는 쥐와 전염병의 관계와 유사하다. 한쪽에 의해서 일방적인 존재를 인정받는 동시에 부정당한다. 그는 전염병을 옮긴다는 쥐같이 회사에 파견된 확인되지 않은 존재이다. 그런 쥐와 ‘그’는 본국에서, C국 쓰레기 더미 속에서, 하수구에서, 보험판매일을 하는 여자 집 정원, 그가 노숙하던 공원 위에 세워진 마트 창고에서 마주친다. 어둠 속에서 어느 쪽으로 도망가는 게 좋을지 생각하는 듯 가만히 있는 쥐가 제가 왔던 길로 돌아가기 위해 어두운 벽 쪽으로 능숙하게 몸을 숨기듯, 그가 늘 해왔던 쥐를 죽이는 행위, 아내를, 2번을, 보험판매원 여자를 죽이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을 숨긴다. 그는 자신이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 익숙한 손의 감각을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외에도 소설 속에서 대부분 인물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 별명이나 번호로 지칭될 뿐이다. 과거에는 동네 입구에 있는 누구네 집, 뚝방길 버드나무 옆집 누구, 놀이터 앞집 누구 등 이름 외에도 동네 사람들끼리 사는 곳에 대한 다채로운 정보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갇힌 아파트는 어떤가? 옆집에 누가 사는지 누가 트렁크를 가져간 것인지, 배식을 빼앗는 쟁탈 속에서 우리는 컴퓨터와 같은 차가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401호 402호 같은 단순 넘버링에 의한 지칭은 엑셀에서도 볼 수 있는 복제적 지칭이다. 이 소설에는 디테일함이 의도적으로 제거돼있어 읽는 내내 술술 읽어지기도 했으나 여러 궁금증을 자아내는 소설이다. 결국, 이러한 장치는 이 소설은 곳곳의 기괴한 상황과 일그러진 인물들로 하여금 마치 인상주의 그림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렇다면 딱히 나쁜 일은 아니군. 전염병인데도 말이야.”
편혜영 , 『재와 빨강』 ,경기 : 창비 , 2010 , Crema Carta eBook Reader, P312

를 통해 주인공이 전염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섰을 때 몸에 느껴진 차가운 공기는 나중에 일을 그만두었을 때도 잊지 못했다.”
편혜영 , 『재와 빨강』 ,경기 : 창비 , 2010 , Crema Carta eBook Reader, P301

'그'가 쥐 잡는 일을 그만둔 이후에도 삶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을 그만두고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극단적인 그의 인생은 쥐를 죽이는 행위를 통해서 다른 무대로 옮겨진다. 좀 더 넓게 보자면 그는 '무언가'를 죽임으로써 그리고 어쩔 수 없었음을 변명하며 회피함으로써 다른 감정선을 가져온다. 아마 그는 이 일을 그만두고도 쥐와 살인을 변명으로 둘러대는 자신을 스스로 끊임없이 죽이면서 또 다른 소비적 잔유물 더미 속에서 무력의 공포와 콘크리트 벽과 같은 무관심을 받으며 마치 컨베이어 벨트 위의 제품처럼 이동할 것이다. 그는 자의가 아닌 상황에 의해 흘러가는 것이다. 그것을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쥐약을 먹었거나 삽으로, 벽돌로, 혹은 누군가의 가방에 맞아 죽었는지, 혹은 전염병에 걸려 죽었는지 모르겠다. 꼬리가 잘린 상태의 죽은 쥐가 담겨있는 쓰레기봉투가 소각장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쓰레기봉투에 들어가기는 조금 큰 쥐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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