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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알고있지만 그 후속편 격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편인 듯 싶다. 하지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전편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다음 이야기이자

해방 직후 혼란한 사회와 함께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일상을 살펴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돈암시장의 순대 냄새와 꿀꿀이죽 냄새가 뒤섞인 냄새, 그 냄새에 오장이 뒤틀리는 듯한 식욕을 이기지 못해 지친 짐승처럼 정기없이 번들대는 눈과 어두컴컴한 얼굴로 두 가지 음식의 영양가와 부피와 주머니 사정을 암산으로 산출해 내느라 발걸음ㅇ르 질정 못하는 막벌이꾼. 브래지어와 거들까지 깃발처럼 내걸고 손님을 부르는 구제품 좌판의 악취보다 더 비위를 뒤집는 야릇한 암내, 그 앞에서 터무니없이 큰 브래지어를 자신의 미숙한 가슴에 대 보는 입술 붉은 어린 창녀. 저만치서 마른침을 삼키며 그 여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호시탐탐 노리다가 그 여자가 아쉬운 듯이 아무것도 못 사고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걸 틈타 살금살금 다가가, 귓전에 바싹 퀴퀴한 입을 갖다 대고, 딸라 있수? 후하게 쳐줄게, 나하고 단골 트면 해롭지 않아, 독침처럼 날카롭고 표독하게 속삭이는 달러장수…."

박완서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서울 : 웅진닷컴 , 1995 , 190-191

전쟁이 마무리되면서 PX에 출근하게 된 주인공이 PX까지의 광경을 묘사한 부분이다.

속사포처럼 쓰여진 글이지만 냄새와 시각, 청각까지 장악하는 문장에 압도됐다.

불안했던 오빠의 죽음과 나머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화자, 그리고 시언니는 1편에서 북쪽으로 강제로 올라가면서 

이곳저곳 다양한 마을을 살펴보듯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는 다시 가족의 돈암동 집에서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일을 찾아 전선에 나선다.

천재 화가와의 만나도 기술했다. “…..그가 만약 천재였다면 사는 일을 위해 예술을 희생하려 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예술보다는 사는 일을 우선했다. 그가 가장 사랑한 것도 아마 예술이 아니라 사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는 일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재주로 열심히 작업을 했다.그뿐이었다.
훗날 그가 예술가로서 받은 최고의 평가를 생각한다면 그는 천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불필요할 때 결코 그 천재성을 노출시키지 않았다…."

박완서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서울 : 웅진닷컴 , 1995 , 266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문학적으로도, 그리고 역사를 바라보는 사료로도

분명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시대와 역사가 만들어낸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현실이 더 비현실적이었던

그 당시를 이 책을 통해 당시를 살았던 한 개인의 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최근 역사책 국정화 이슈가 정치적 쟁점이 되어 온 국가가 시끄럽다.

하지만 올바른 역사가 무엇인가? 나는 일찍이 올바른 역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역사학자를 본적이 없다.

일제 치하에서 굴욕적인 시기를 보냈던 것도 우리의 역사요

일제의 앞잡이를 도맡아 했던 친일파들도 우리의 역사의 일부이다.

그리고 한치 앞도 볼 수 없었던 역사의 풍파 속에서 민족의 종말을 보면서도

끝까지 대항하려했던 숭고한 희생자 또한 중요하게 기억해야할 우리 역사의 일부이다.

국가가 책임져 주지 못한, 아니 오히려 개인을 철저히 말살했던 기록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박완서의 이 2부작 책에서

소설 속 주인공은 북한군과 남한군 어느쪽도 신뢰하지 못한다.

오로지 나와, 나의 가족만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런 국가가 누구에게 올바른 역사를 외친다는 것일까. 정치적 힘으로 과오를 덮으려고 한다면

끝내는 역사의 장막으로 덮어질 이 시간들이 훗날 어떻게 기록되고 비웃음 당하게 될지...참 부끄러운 일이다. 

소설보다 당시를 반영하지 못하는 역사책이 등장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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