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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진명여고 위문편지 이슈 - '서비스'에 대한 우리의 인식.

아주 오래 전 신문 사설에서 읽었던 한 글이 떠오른다. 글쓴이가 미국에서 군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Thank you for your service라는 말을 하고 내려서 군인에 대한 국내와 다른 미국인의 존중을 느낄 수 있었다라는 이야기였다. 미국과 한국은 ‘서비스’에 대한 극명하게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서비스에 대해서 형식적으로라도 tip을 주고 감사함과 존중을 표하지만, 한국에서 ‘서비스’는 무료, 공짜, 내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북쪽 철책선을 경계로 실질적 적을 경계하고 있는 한국 군인에 대한 인식도 ‘서비스’에 대한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지금 무성의하고 조롱이 섞인 진명여고 위문편지로 대난투가 벌어지고 있다. (위문편지라는 구시대적 단어도 어색했지만, 아직도 위문편지로 구색맞추기 봉사활동 시간을 학교에서 주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가 2022년이 맞나 싶기도 하다.) 실제 편지 작성자에 대해서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겠지만, 이 논쟁이 우리를 슬프고 서운하게 만드는 것은 군인에 대한 인식이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소중한 20대 10년 중 2년이라는 세월을 군대에서 강제로 보내야하는 것은 대한민국 남성 국민에게만 지워지는 무거운 짐이다. 전 세계에 징집제를 유지하는 나라도 많지 않고, 2년이라는 장시간동안 사회와 단절시키면서 군복무를 하게 만드는 나라는 더 드물다. 분단이 된지 70년이 넘어 곧 100년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군복무 대상자들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다른 이들 보다 더 무거운 의무를 지고 가야하는가? 더 무거운 의무에 의해 더 무거운 권리가 주어지는가? 아니면 그 의무에 대한 적합한 보상이 이루어지는가? 오히려 ‘군바리’라고 폄하해 불리거나, 살인을 배운다고 격하되거나, 이번 위문 편지에 담긴 내용처럼 조롱을 받는다. 그렇다면 조롱을 받는 입장에서도 군대에 가기 싫고, 군대 가는 것이 한 없이 가치없는 일로 느껴질 것이다. 이는 군인의 행실과 기강 헤이, 국방력 저하 문제로 이어지고, 이러한 문제들은 다시 조롱하는 편에 서서 서로에게 끊임없이 부정적인 강화피드백을 주는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부정적 강화 피드백은 사회전반, 특히 공공 분야에서 많이 발생한다.

우리는 공권력을 보는 멸시와 조롱섞인 시선에 대해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민원 창구의 공무원을, 민원과 징계가 무서워 총을 뽑지 못하는 경찰들을, 무시받는 군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대중의 시각은 너무 낡았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차지하고 있던 공권력이 백성과 국민들에게 믿음을 준 적은 별로 없었다.
나라를 버리고 간 임금, 부조리한 관리, 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장 선 일제시대 친일파 공무원과 경찰, 광복이후에도 공무원과 경찰, 군인들로 남아 있던 친일파들, 전쟁 속에서 나라를 버린 대통령, 이념 분쟁 속에서 죄없는 사람들을 실적을 위해 잡아넣었던 경찰, 자국민을 총으로 쏜 군인.
겹겹이 쌓인 역사의 단층을 바라보면, 공권력과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어디에서 왔을지 추정은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는 조선도, 대한제국, 일제시대도 아니며 더 이상 독재정권, 군사정권의 망령도 사라져간다. 어제는 공권력과 공공 서비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타당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낡은 감정선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나라가 됐고, 전쟁 휴전 중임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선진국으로 발전한 데에는 전방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있는 군인들 역할도 있음이 분명하다. 

사회 전반에 혐오와 갈등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아까 이야기한 부정적 강화 피드백을 상호 간에 주고 받으면서 점점 더 썩고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얽히고 섥힌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할까? 복잡하게 꼬인 선을 풀기 위해서는 선의 양쪽 끝 지점을 먼저 찾는 것이 유리하다. 우리도 Thank you for your service, 감사합니다. 라는 문장으로 실타래처럼 얽힌 줄의 한쪽 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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