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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Movie] 최악의 하루



이 영화에 대한 좋은 평가는 작년부터 쭉 들어왔지만 볼 기회가 없던 중 마침 옥수수에서 주말동안 무료로 오픈한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역시나 극장에서 봤던 예고편 대로 한예리가 연기한 은희가 겪는 최악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 순서대로 은희는 하루동안 료헤이, 현오, 운철를 만나는 이야기다. 영화의 주 무대는 필자도 좋아하는 북촌과 남산 일대. 이곳에 대한 감독의 애정어린 시선도 영화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감독의 전작을 봤던 기존 팬들은 기존 영화에서 나온 캐릭터 이름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마치 시리즈물처럼 이어지는 분위기를 느끼기도 했다는데, 김종관 감독의 작품을 처음 보는 입장에서는 그저 신선하면서도 잔잔한, 그리고 갈등의 절정에 이르러서는 시냇가에 돌맹이을 던진 듯한 파장을 그리며 사라져가는 물결 같은 영화였다. 특히 은희라는 캐릭터는 최근 봤던 한국 영화 캐릭터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나름의 매력을 가진 캐릭터였다. 한예리라는 배우가 연기를 잘 소화했기도 했지만, 모든 공간과 시간을 자신의 무대로 삼아 자신만의 연기를 하는듯한 캐릭터는 분명 착하지는 않지만 미워할 수도 없는 인물이다. 특히 각각의 남자를 만날 때마다 완전히 변모하는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마치 새로운 버전의 <아멜리에>를 보았을 때의 느낌이랄까?

은희가 그토록 다른 색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올라갈 무대가 다양했기 때문이다. 각 남자마다 외모와 풍기는 분위기, 성격, 직업까지 모두 다양한 느낌의 사람들에게 제각각 연기를 하고있다. 따라서 여기서 영화의 두 번째 포인트인, 은희가 마주하고 있는 남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현오는 그녀의 원래 남자친구로 보인다. 아침극의 조연이지만 연예인 생활을 하고 있고 은희와 현오가 만나는 시간은 주로 저녁시간, 모텔에서 만나는 듯 하다. 자조적인 대사를 내뱉기도 한다. 운철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코믹하면서도 짜증나는 캐릭터다. 배우 이희준은 이제 이런 진상남? 연기의 달인 수준에 올라간듯 하다. 아마도 영화 <여교사>에서 배우 이희준의 연기를 봤던 분들이면 운철이라는 캐릭터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특히 운철은 영화를 보고나서도 여운이 남는 대사들을 많이 남기는데, 영화를 보는 재미를 위해서 대사를 글에 옮기진 않겠다. 마지막으로 일본작가, 료헤이는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이다. 그의 대사는 유일하게 나레이션으로 등장할 만큼 영화의 핵심적인 부분에 닿아있는 캐릭터이다. 영화를 본 후 해석이 각기 달라질 수도 있지만, 영화의 시작과 끝에 나오는 료헤이의 모습으로 보아 영화의 모든 내용이 그의 소설 속 이야기인 것 같은 느낌마저 받는다. 그의 작품 속에서 모든 인물들을 가혹한 상황에 빠뜨린다는 점에서도 영화의 전반적인 상황과 비슷하다. 은희 - 료헤이 - 인터뷰를 하는 여기자 의 묘한 관계도 생각해볼만 하다.


최악의 하루라는 하루에 펼쳐지는 요상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 또한 흥미롭다. 남산과 북촌. 이제는 워낙 많이 알려진 서울의 관광명소이기도 하지만 영화 속 배경은 실제로 감독이 좋아하는 감정이 뚝뚝 묻어나오는게 느껴질 정도다. 은희가 만나는 남자만큼이나 영화 속에서는 카페가 자주 나온다. 은희도 두 번, 료헤이는 은희와, 인터뷰, 팬싸인회를 진행하면서 카페를 방문한다.  카페에 들어서면서 나오는 차와 테이블 부감 장면이 광고영상 마냥 이쁘게 나온다. 또한 이동장면에서는 배경을 중심으로 영상을 보여준다. 인물들의 전신을 담아 배경 속에서 인물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다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영상을 사용한다. 

독특한 이야기와, 개성이 살아있는 인물들, 그리고 예쁜 배경이 있는 이 영화가 이토록 좋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올해 들어서 본 한국 영화(물론 올해 본 영화 대부분이 극장에서 본 영화고 '최악의 하루'는 작년에 개봉한 영화지만.)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간결한 영화. 영화가 끝나고 한참 뒤에 글을 쓰는데도 다시 이야기를 떠올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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