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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Review] 은교

#은교
소설 원작인 영화가 호평을 받기 위해서는 소설의 후광을 제대로 업고 소설 팬들을 끌어오는 방식과 소설에서 모티프만 따와서 영화감독이 재해석하는 방법이 있다. ‘반지의 제왕’,’해리포터’, 영화는 아니지만 ‘왕좌의 게임’,’나니아 연대기’까지 판타지 계열의 소설들이 영화로 제작했을때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전자에 해당한다. 판타지 소설이 가지고 있는 명료한 플롯, 서사적인 스토리는 확실히 소설을 영화로 옮기기에 좋다. 하지만 일반 소설들, 특히 장편소설을 영화로 만들기는 쉽지않다. 곳곳에 베어있는 은유, 멈춰있는 글자만이 줄 수 있는 느낌을 영화가 살려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영화는 어쨋든 영상이므로 구도와 대사, 살아있는 인물의 표정까지 모두 동시에 진행되는 장르다. 소설의 정지된 글이 묘사하는 부분 바깥의 것들은 모두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영화는 이 상상력이 채우는 여백을 감독의 생각과 배우들의 연기, 배경으로 모두 가득 채워야한다. 굳이 말하자면 영화와 소설은 쓰고 있는 무기가 다르다고나 할까. 영화 은교는 그런 점에서 완벽히 잘못된 무기를 집어들었다. 일단 나는 영화 은교를 몇 년전에 봤었다.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가 왜이렇게 비난을 받는지 알 수 없었다. 적당한 완급 조절에 갈등요소, 늙은 시인과 고등학생 소녀, 그리고 공대생출신 제자까지. 독특한 주제와 자극적인 장면들은 영화만 놓고 봤을때 그렇게 부족해보이지 않았다. 다시 돌아와서, 최근 박범신 작가의 소설, 그러니깐 영화의 원작 소설 '은교' 를 읽었다. 너무나 놀랐다. 영화와 소설은 아예 다른 내용이었다. 박범신 작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독자인 내가 영화를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영화는 <은교>를 모두 찢어발겨 요즘 시대에 적합한 자극적인 입맛을 내기위해 엉성하게 버무려 놓은 꼴이었다. 박해일이라는 배우를 좋아하지만 시인 이적요를 연기하기에는 무리였다. 분장으로 덮힌 얼굴로는 온전한 표정을 지을 수 없었고, 제한된 그의 연기 속에서 이적요를 만나는 것은 힘들어보였다. 인생의 끝, 가파른 절벽에 서있는 노인의 연기는 흉내로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고 거기서 만난 은교도 성적 대상이 아닌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자신의 후회되는 젊음, 청춘에 대한 후회와 애착이 만들어낸 동경의 대상이었다. 영화에서 과감하게 생략한 이적요 시인의 아름다운 언어는 이 이야기가 노망난 영감이 여고생을 탐닉하는 이야기가 될뻔한 인물 구조를 사랑과 청춘, 문학을 노래하는 이야기로 만드는 핵심이었다. 그것을 빼버렸으니 이야기는 한없이 소설 <은교>와 닮아있으면서도 같은 분위기도, 같은 아름다움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소설의 내용과 달리 감독이 바꾸어버린, 또는 새로 넣고 빼버린 부분이 많다. 한 부분씩만 살펴보겠다.
바꾸어버린 부분은 바로 이적요와 서지우의 첫 만남 장면이다. 이적요의 강의에 우연히 청강한 무기재료공학과 서지우와의 ‘별’에 대한 대화, 시적 감수성에 대한 대화는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겼다. 또 스크린에서는 강의 중간에 이적요가 ‘무기재료공학이 무기를 연구하는 곳이라서..’라는 말을 하면 서지우가 건방진 목소리로 ‘무기가 Weapon이 아니라 inorganic’ 이라고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소설 속 서지우는 수업이 끝난 이후 이적요의 연구실로 찾아가 대화를 하는 도중 무기 재료에 대해서 설명한다. ‘…무지를 그가 그 즉시 지적하지 않은 걸로 봐서, 생각보다 착하고 겸손한 청년인 것은 확실했다.’ 이 부분이 달라진 것은 분명 영화 전반에 흐르는 서지우라는 인물의 색채를 변화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새로 넣은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거북하게 느낀 서지우와 은교의 베드신에서 은교가 ‘여고생이 왜 남자랑 자는 줄 알아요?’라고 던지는 대사다. 왜 들어갔을까 싶고 영화를 보는 도중 갑자기 헛웃음이 나는 부분이었다.
사라진 부분은, 일단 영화 속에서는 이적요의 전략?이 잘 들어나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이적요는 자신의 고상한 시인의 이미지가 완전히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임을 말하며 이것이 자신의 죽음 이후의 불멸의 시인이 되기 위해 설계한 전략임을 말한다. 어떻게 하면 뻔한 문학 평론가들을 속일 수 있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는지 고백함으로서 동시에 은교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 인물을 통해 ‘노년 <-> 청춘’이라는 대립관계와 함께 ‘가면 <-> 맨얼굴’이라는 구조를 통해 은교와 대조적인 이적요의 모습이 부각된다. 은교에게 더욱 애착을 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빠진 부분은 바로 ‘노랑머리’라는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적요에게 정신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안기고 서지우와의 갈등을 더 심화시키는 동시에 시인과 은교의 사이를 벌려놓는 중요한 계기임에도 과감하게 생략했다.

 이적요가 서지우에게 ‘별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누가 자네에게 가르쳐주었는지 모르지만, 별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추한 것도 아니고, 그냥 별일 뿐이네. 사랑하는 자에게 별은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배고픈 자에게 별은 쌀로 보일 수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적요의 이름을 한 박범신이 문학적 감수성에 대해, 그리고 타성에 대해 고민해본적 없는 자에게 던지는 매서운 답변이었다. 감독은 이 장면을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한 번도 그 날 선 대사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느낌을 받지 못했을까.

어렸을 적 완전히 같은 소설을 읽고도, 완전히 같은 영화를 보고도 다른 감상,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사실 다름은 온전히 받아들여져야한다. 이 영화도 나와 같은 <은교> 소설을 읽었으나 전혀 다른 감상을 지녔던 감독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적요와 동떨어진 시각으로 이적요라는 인물을 다루고자 했으니 생기는 수 많은 부딪힘이 느껴졌다. 감독의 시선에 관객의 시선까지 더해지면 감독이 생략했던 ‘노랑머리’가 스크린 밖에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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