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을 다녀온 이후부터는 여행을 떠나게 될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좀 더 알고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과 인도여행 중 긴 이동 시간동안 인도영화와 인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곤했는데 이번에 대만 여행을 떠나기 전에 대만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선택한 두 개의 영화 중 첫 번째 영화 바로 ‘비정성시’다.
영화의 화질을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는 1989년 제작된 오래된 영화고 영화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더 오래된 해방 직후와 그 부조리들이 사회에 만연할 60년 전이다. 영화를 접하기 전 대만은 친일본적이 느낌이 들고 일본의 지배하에 있을 때도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듯 일본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인 대만에서도 친일파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였고 우리와 비슷한 정서를 느낄 수도 있었다.
영화의 시작은 임아록 가문의 장손을 얻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 이후로 낳은 네명의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는 애잔한 근현대사를 통과하면서 비극으로 치닫는다.
맏형인 문웅은 각종 밀수에 참여하고 있고 욱하는 성질을 가졌지만 가족을 무척 생각하는 가장이다.
둘째 문상은 일본군에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고 셋째 문상은 상하이조직들과의 생활과 설탕 밀수로 가업을 키워보려다가 친일파라는 죄목으로 끌려갔다가 미치광이가 돼서 돌아온다.
주인공격인 막내 문청(양조위)은 귀머거리에 벙어리지만 사진가로서 일을 하면서 반정부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극이 아니다. 곤객은 그들의 조용하지만 치열한 삶을 문지방 뒤에서 조용히 관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어떤 영화보다 많은 여백이 식탁에서 그릇과 젓가라기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밖에 들리지않는 식사시간마냥 보는 이의 마음마저 공허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공허는 그들의 비극적인 삶들이 들려주는 노래에 더 큰 울림을 한다.
극 중 문청이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위해 사용하는 필담을 영화는 글자를 찍어냄으로서 표현한다. 영화 중간중간 어떤 사건이나 소음과도 분리되는 이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영사기의 마지막 필름이 넘어갈 때마냥 ‘탁’영상은 멈추지만 영화내 에피소드에 흐르는 감정들이 이 고요한 글씨 속에서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대만은 참 우리나라와 많은 유사함을 가진 나라다. 역사적으로 같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해방이후에는 대륙인과 대만인들이 이념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대립을 하였고 그런 보이지않는 것들에 의해 이곳저곳에서 국민들만 피해를 입는 모습에서는 해방이후 어수선했던 남과 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다른 가족원들은 불행으로 직행하는 와중에도 문청만큼은 착실한 성격 때문인지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가족들과도 왠지 분리된 느낌이 강하다. 반정부 활동을 하는 관영과 친해 그의 동생인 간호사 관미를 만난다. 그들이 만난 첫 장면부터 관미는 말을 듣지도 하지도 못하는 문청에게 큰 관심을 보인다.
이 영화에서 펼쳐진 유일한 희망, 맏형과는 큰 차이가 있는, 가장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문청 또한 관미에게 관심이 있던걸까? 영화에서는 완벽히 파악할 수 없다. 동생과 친구가 걱정되는 관영은 문청에게 관미를 부탁하면서 동생과 친구를 보호하려고 한다.
아이를 낳고 행복해야할 가족이지만 문청은 듣고 말할 수 없으니 늘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런점에서 관미는 늘 문청과 마찬가지로 고요한 세상 속에서 살아야하는 짐을 지고 있다.
이런 장면에서 이 영화에서 문청을 귀머거리,벙어리로 만든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떤 슬픈 장면에서도 문청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고 담담한, 감정을 고스란히 옮겨 담을 수 없는 글로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뿐이다.
이는 그 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이 처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을 잃어가는 와중에서도 멍하니 보고만 있어야하는.
반대편에서 앉아서 화면을 보고 있을 관객들 또한 결국 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우리 모두 문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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