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Book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 제목이 책을 고를 때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육아와 출장으로) 정신이 없어,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읽을 때에도 책 제목에 대해서는 희미해진 상태였다. 처음에는 작가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의 전기를 통해 고난과 혼돈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통해 한층 성장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책 중반부터 내용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단순히 미숙한 자신이 성장한 에세이가 아니였다.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조사하다가 오히려 가장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책 제목은 이 이야기의 반전을 그대로 담고 있다.(책 제목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책을 읽는다고 해도, 이 반전은 예상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작가는 책 제목을 이렇게 과감하게 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던은 평생을 바친 어류 수집 표본이 재난에 의해 모조리 파괴되는 사건 이후에도 끊임없이 어류를 수집하며, 비늘에 바늘을 넣었다. 조던은 언뜻 보기에도 끈기와 사명감에 가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성과 뒤에는 숨겨진 것들이 많다. 물론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야겠지만 그가 정치인이나 유명 영화배우가 아니라 과학, 특히 생물학과 분류학의 기둥 격인 인물이기 때문에 그가 가진 다양한 이슈들은 문제가 된다.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공은 온전히 본인이 가져갔다는 점, 제인 스탠퍼드가 의심스러운 사건으로 사망했고 조던이 이 사건을 빠르게 마무리하여 자신의 학장 위치를 지키려 했던 점, 무엇보다도 우생학의 신봉자로 노년의 많은 시간을 우생학 홍보 및 ‘부적합’ 인원에 대한 불임수술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점 때문에 스타 조던의 일대기는 우리를 더 이상 ‘아름답고 새로운 경험으로’ 인도해주지 못한다. 그리고 나열한 이 모든 사건에서 조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가 그토록 잘한다고 자부했던,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사리 분별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일을 처리할 때 자신이 이룬 과학적 성과와 유명 과학자의 권력을 기반으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 모순적이다. 그리하여 과학자가 당연히 갖춰야 할 복잡성에 대한 이해보다는 사례를 단순화하여 자기 좋을 대로 이름을 붙이는 ‘물고기 표본 수집’같이 다른 일도 동일하게 행한 것이다.

나는 그 커튼들 너머, 우리가 자연 위에 그려놓은 선들 너머를 간절히 보고 싶었다. 다윈이 거기 있을 것이라 약속했던 땅, 분기학자들이 볼 수 있었던 땅, 어류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경계가 없고 더 풍요로운, 아무런 기준선도 그어지지 않은 그곳을.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1 W. B. 예이츠의 것으로 알려진 이 인용문을 나는 여러 해 동안 벽에 붙여두었다

다른 세계는 있지만, 그것은 이 세계 안에 있다는 예이츠의 문구처럼, 우리는 여전히 동일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세상을 바꿀 놀라운 소식을 접한다. 80~120명을 태울 수 있는 스타쉽이 우주를 향해 시험비행을 계속 시도하고 있다거나, ChatGPT와 같이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대화와 답변이 가능한 LLM 인공지능이 쏟아져 나오는 현재. Ground breaker,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제한적인 지식이나 편견이 만든 관점으로 세상을 보지만 ground breaker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부여한다.

그리하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이 책도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부여해 줄 것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스타 조던 평생의 업적도, 인간이 가지고 있던 4000년이 넘게 가지고 있던 ‘편견’도 사실은 과학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물고기라는 우리의 낡은 ‘인식’이 허무맹랑한 것임을 알게 된다면, 책을 읽는 독자도 다양성과 소수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우주에 대해서도, 지구에 대해서도, 그리고 바로 당신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니 모든 것에 대해 단정짓지 말 것. 당신의 ‘물고기’도 사실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가 알겠는가. 해왕성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비로 내린다는데.2 그건 정말이다. 바로 몇 년 전에 과학자들이 그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반응형

'Review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마당이 있는 집>  (0) 2023.07.08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  (0) 2023.04.04
트렌드 코리아 2023 후기  (0) 2023.02.09
나의 따뜻하고 간지러운 이름  (0) 2023.01.10
언더그라운드 - 일본 지하철 사린 사건  (0) 2022.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