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중 flea market을 둘러보는 건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다. 국내 flea market과는 다르게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지 알 수 없는 독특하고, 오래된 제품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레트로 게임기들과, 레트로 게임팩들, 그리고 필름카메라를 파는 상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LA 헐리웃 거리에서 적당히 떨어진 fairfox 고등학교에서 주말에 열린 flea market에 가게 되었다. 여러 레트로 장비를 파는 곳을 구경하다가 필름 카메라를 파는 상점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족히 50년은 된 듯 보이는 카메라들도 많이 있었다. 적당히 쓸만한 필름 카메라를 찾느라, 판매자와 여러 이야기도 나눠봤지만 고민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필름 카메라는, 일반 미러리스나 디카에 비해 인터넷 상에 정보도 거의 없었고, 기능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도 없었기 때문에 각 카메라 별로 비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디자인도 이쁘고, 가격도 $100 수준이라 Pentax k1000을 구매했다. 구글에 검색해도 국내 사용자의 후기는 그렇게 많지 않은데, 어떤 블로그에서 사진을 pentax k1000으로 배웠고, 너무 좋은 입문 카메라였는데 지하철에서 잃어버려 아쉽다는 어떤 분의 블로그 글을 보고 구매를 결심했다.
flea market에서 구매하면 manual도 없고 별다른 사용법도 알려주지 않아 불편할 수도 있지만, 유튜브에는 필름을 어떻게 감고, 어떻게 빼는지 다 자세하게 영상으로도 남아있어서 쉽게 사용 가능하다. Pentax k-1000 film load & unload 따라하기 유튜브 링크(https://youtu.be/-AYOgU5Od2E )
TTL 방식의 감도 센서가 있어서 일회용 필름카메라처럼 무작정 찍는 건 아니고, 카메라에 들어오는 광량을 적절하게 조리개로 조절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과다 노출되어 하얗게 나오는 사진이나, 너무 어두워 아무 영상도 보이지 않는 일들을 최대한 피할 수 있다. 달려있는 렌즈는 원래 번들로 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리개를 개방하면 꽤나 아웃포커스가 잘 나오긴 한다. 다만 화각이 좀 아쉬울 때가 있는데 카메라 마운트에 맞는 렌즈를 아마존이나 이베이에서 구매할 수는 있는 것 같다. 기회가 되면 번들렌즈가 아닌 다른 렌즈로도 찍어볼 예정.
감도센서를 보고 주변 밝기에 따라 ISO를 조리개를 확보하고, 심도 DOF(Depth of focus)를 조절하기 위해 조리개을 열거나(심도가 얕아진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아웃포커스를 만들 수 있다.) 닫아서(심도가 깊어져, 이미지 전체에 포커스가 맞는다.) 적당한 DOF를 결정한다. 그 이후에 프리즘 방식의 focus dicator를 보면서 렌즈의 초점링을 돌려 원하는 지점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린다. 애초에 뷰파인더를 보기 위해 카메라에 얼굴을 갖다대기 전부터 필름을 감는 동작까지 필요하니, 이 카메라는 전자식으로 이뤄지는 건 감도센서 하나 뿐이고 전부 수동으로, 기계적으로 동작을 해야한다. 자동으로 주변환경에 따라 노출시간을 조절해주고, AF를 통해 알아서 초점, 조리개까지 결정해주는 디지털 카메라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전자식에서 익숙해진 편리함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필름 카메라 구매를 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역설적으로 이런 기계적인 조작이 마음에 든다면, 참 마음에 드는 카메라다. 바디 자체가 무겁긴 하지만 셔터를 누를 때마다 느껴지는 묵직한 기계식 셔터음과 손맛은 일반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전혀 따라할 수 없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에 좀 더 집중하게된다. 필름에 새겨진 상은 미리 볼 수도, 삭제할 수도 없다. 오직 필름 현상이후 사진을 직접 확인해봐야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 잘 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필름 한 통, 35장의 사진을 찍을 때 더 아껴 찍게 되고, 대충 구도만 나오면 셔터를 연신 눌러댈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와 전혀 다른 태도로 사진을 찍는다. 좀 더 침착하게, 광량을 조절하고, 포커스를 맞추고, 지금 광량에서 사진이 제대로 찍힐 까 고민하게 되고, 흔들리지 않게 숨도 고르게 된다.
HDR 같은 사진을 더 잘나오게 하는 기능도 없을 뿐더러 AF도 없고, 자동 조리개 조절, 자동 셔속 조절도 없다. 정말 물리적으로 렌즈가 열린 조리개만큼 빛을 수광하고, 기계식 셔터로 노출 시간을 조절한다. 필름 위에 상을 노출하여 찰나의 순간이 필름 위에 기록된다.
너무 편리함 속에서만 살아서일까? 간만에 마음에 드는 불편함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