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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Korean Sketches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들 이야기한다. 이런 시간을 뛰어넘는 대화를 가능케하는 것은 바로 과거에 남긴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록자는 사라져 그 의견을 말할 수는 없지만, 그가 남긴 내용이 남아 기록을 읽는 현재의 우리가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역사의 기록은 공식적으로 남겨져 있는 것들도 많지만, 비공식적으로 개인들이 남겨놓은 것이 더 많다. 때로는 개인이 남긴 사료들이 공식적인 역사적 기록에 비해서는 볼품없어 보이기도 하고, 틀린 오류의 부분이 많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기록된 공식적인 역사보다 더 흥미로운 부분도 많다. 그런 점에서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역사속에서’는 6.25전쟁 한복판에서 작가가 직접 보고 느낀 감정들을 현장감있게 전하는 문학으로서 역사적 가치와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끈다.

이 책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는 James Scarth Gale이 YMCA 소속의 일반인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보낸 기록 중 초기 10년 시절인 1888~1897년의 기록인 <Korean Sketches>를 100년이 지난 오늘날 번역해 정식 출간한 책이다. 외부에서 바라본 극동의 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주변 나라들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개항을 하여 서양 국가와 교류를 하고 있을 시점에 조선은 나라의 문을 꽁꽁 닫으려다가 강제 개항을 한 상태였다. 외국인들에게 아무 것도 알려진 것 없는 조선이라는 극동의 땅은 전세계인들에게 온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책에도 나와있듯, 어떤 외국인들에게는 조선이 단순히 미개한 나라로만 여겨져서 강압적이고도 일방적인 선교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나온다. 제임스 게일이 조선의 마지막 10년에 방문한 수많은 선교사들과 차별화되는 점도 여기에 있다. 분명 이방인의 눈에는 길거리에 시체가 넘쳐나고, 사람이 죽고도 몇일 간 장사를 지내지 않으며, 지독한 가난과 굶주림이 퍼져있는 조선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다. 하지만 게일은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조선 땅에 나고 자란 이들에 대한 사랑과 문화,역사에 대한 존중을 표한다. 동양의 그리스라는 표현을 하면서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우상숭배로 배척할 수도 있는 제사문화와 장례문화, 불교, 유교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은 점은 지금의 시각에서 봐도 놀랍다. 이외에도 조선사람들을 단순히 가르쳐야할 대상으로만 보지않고, 스스로도 논어와 한반도의 역사를 공부해서 조선사람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다고 하니 정말 특이한 이방인이다.

책의 구성은 조선에 대한 여러 단상을 적어놓은 구성인데,(상놈에 대한 글, 양반에 대한 글) 그 이외에도 직접 겪은 에피소드들도 많이 나와있다. 이를테면 명성왕후가 시해된 그날의 기록이나 청일전쟁에 대한 기록은 역사책에서 볼 수 없는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읽고 나면 게일의 이후 행보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그가 정식 목사가 되기 전에 조선에서 보낸 10년을 정리한 기록이라고 보면된다. 그 이후 다른 나라도 돌아다녔지만 1910~20년대에도 조선에서 더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검색을 해보면 대부분 기독교 단체에서 게일의 이후 삶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성경번역에도 꽤나 시간을 쏟은 것으로 보인다. 여러 기독교적인 행보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게일은 이후 조선에서 계속 지내면서 일제침략의 야만성을 해외에 알리고자 했다.(<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에서도 일본의 빠른 선진문물 흡수에 대해서 칭찬을 하다가도, 명성왕후 시해 사건을 다룬 편에서는 일본인들의 이중성 및 야만적임을 고하고 있다.)

책을 덮는 순간에도 옛 벗이었던 조선사람이 길가에서 '긔일이, 긔일이'라고 외쳤다는 에피소드가 떠올라 웃음을 짓게 만든다. 혼돈 그 자체였던 조선의 마지막. 조선 한복판에서, 외국인들이 모여사는 정동이 아닌 조선인들 속에 섞여 길을 걷고 있는 '긔일이'를 떠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조선에 대한 애정으로 이런 소중한 역사적 기록을 남겨준 '긔일이'가 조선을 떠난지 80년이 지난 오늘날 조선의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떠올릴지 궁금함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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