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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탄핵판결이라는 역사적인 날이었기 때문일까. 왠지 아침에 일어난 시점부터 불안불안한 감정이 있었다. 이상하게 늦게 일어나기도 했고 물건을 떨어뜨리는 일도 잦았다. 이상하게도 출근길 지하철 안에 붐벼야할 공간에 사람들이 없어 불안했다.

역사적인 탄핵 결과 선고일, 11시. 회사에 있었지만 다들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들 인터넷으로 탄핵 결과를 보고 있어서인지 인터넷도 불안정했다. 처음 박근혜 변호대리인단의 탄핵 소추 자체, 헌재의 심리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에 대해서 짧고 굵게 사실이 아님을 언급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발표에서 탄핵 소추 사유에 대한 판결. 언론 탄압과 세월호 7시간은 결국 탄핵 사유가 되지 못했다. 그 순간 혹시나 탄핵이 인용되지 못할까 심각한 걱정이 들었지만 헌재 재판 판결문이 대부분 미괄식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당연히 탄핵인용 방향일 것이라고 믿었다.(믿고 싶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법한 행동과 태도, 그리고 전혀 반성하지 않고 언론을 장악하여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했다. 자신에 대해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사법기관과 헌법 기관에 대해서는 수사를 방해했고, 그들에 대한 국정원 사찰의혹도 있었으며, 의도적으로 본인이 출석하지 않거나 수사에 응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헌법과 법치, 정의를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위법하며 적법하지 않은 대통령을 헌법적인 방법으로 몰아내는데 장장 약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수 많은 국민의 눈물과 땀, 촛불이 있었다.

대의민주주의가 가진 한계라고 할 수도 있지만, 분명 시스템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권력에 대한 언론의 견제, 삼권분립으로 인한 적절한 권력 분리 및 서로에 대한 감시가 잘 지켜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스템적 개선에 앞서서,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국민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할 것이다. 누군가의 딸이 아니라, 자신들의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라, 국회에 있을동안 의정활동을 실제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진행하였는지를 데이터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야한다. 자신의 말을 지키고 거짓 약속을 하지 않는지를 보고 대통령으로 뽑아야할 것이다. 태극기를 들고 길거리에 나간 사람들은 이제까지 공적을 생각해 넘어가야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엇이 박근혜 정부의 공적이냐고 물었을 때, 아무 대답도 못하는 비이성적이고 감정 편향적인 흡사 종교와 비슷한 행태의 답변을 하는 유권자가 아니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데이터와 수치를 가지고 박근혜 정부의 공적을 설명할 수 있는 유권자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모두가 자신의 주장을 탄탄하게 받칠 수 있는 근거로 논리의 구조를 짤 수 있다면 이제서야 건설적인 토론이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토론의 결과를 양측이 수용하고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 이후에야 관용과 용서의 사회, 어쩌면 하루가 멀다하고 들리는 대연정의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번 탄핵 인용 결과를 받아들이는 반응은 모두가 사뭇 달랐다. 어떤 이는 회사에서 환호를 했으며, 학생들은 역사적인 순간을 TV로 지켜보며 박수를 쳤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박사모는 집에서 눈물을 삼키며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중계를 봤을 수도 있다. 같은 광장에 서있지만 한 쪽은 촛불, 한 쪽은 태극기를 가지고 나온 이들의 반응 또한 극명하게 달랐다. 같은 국민, 같은 사회,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이렇게나 분열되고 통합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중간에서 대통령이 파면되어도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냉소를 지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라. 정치와 청와대 안의 주인에 따라 그렇게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지 못하더라도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바뀌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초등학생도 전학을 가면 함께 지낸 친구들한테 인사를 하고 가는데 대통령의 자리에 있던 사람이 자신의 파면에 대해 공식적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남긴 것은 진실은 밝혀진다는 말을 3자를 통해 전해 온 것이었다.

그녀의 말은 이제 우리가 절반쯤 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적어도 불의를 저지른 자들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기까지 우리는 딱 절반쯤 온 듯 하다. 이제는 모두가 한숨 돌릴까하는 그런 순간에 우리의 파면된 ‘전’ 대통령은 정의의, 합법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알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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