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광장
대한민국은 지난 10월 24일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아니 뒤집혔다고 해야할까. 그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아침마다 뉴스를 보았을 때 박 대통령과 최순실에 대한 새로운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 많은 국민들은 절망했다. 그 이전 정치권 비리가 밝혀졌을 때와는 또 다른 양상이다. 해당 비리로 인해 허탈감을 느끼는 대상은 항상 제한적이었고 그로인해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사기 어려웠다. 그리고 언제나 금방 다른 이슈가 튀어나와 사건의 본질을 알기도 전에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다. 아마도 대통령은 이번 일도 전과 같이 조용히 무시하고 버티기로 나오면 적당히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최순실 - 박근혜 게이트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청년과 장년층이라는 벽도 허물고 심지어 학생들과 노인들의 분노마저 일으키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비리와 국정농단으로서 우리의 머리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역사적 사건이다. 밝혀진 사실과 정황들이 풍선처럼 매시각 그 부피를 키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사태의 당사자인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을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모른다는 말로 일관하면서 범죄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에 대해 죄송하고 무엇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는 것인가? 내용이 들어있지 않은 반성과 그 공허한 사과에 국민들은 즉각적으로 분노했다. 말에 어느 감정도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마치 ‘너희들이 원하는 것이 고개를 숙이는 거면 얼마든지 해줄게’라는 느낌이었다. 우병우 같은 작자는 그마저도 하는 척조차 하지 않는다. 여전히 오만하고 괴기한 눈빛으로 째려볼 뿐이었다. 그것이 이 정부와 대통령이 국민을 보는 시선이라고 봐도 무방할듯 싶다.
이번 박근혜 게이트는 연예계, 문화계, 체육계, 보건, 경제, 외교, 검찰에 이르기까지(사실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사항이다.) 최순실의 손길이 뻗지 않은 곳이 없다는 점에서, 어디부터 썩은 것인지 알 수 없는 국가를 만들어 놓았다는 점에서 국민의 절망에 빠뜨리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절망이 11월 12일 광화문 100만 촛불시위와 12월 3일 전국 200만 촛불시위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무엇이 시민들을 밖으로 이끌어냈을까. 200만 인원에게 일당 5만원이 제공되는 것도 아닌데 꿀같은 주말 휴식을 포기하고 광화문으로, 각 지역 광장으로 시민들을 이끈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시작은 분명 저 무능하고 비도덕적인 집권세력과 이 권력을 이용해 국민과 기업, 경제, 문화 등 국정 전반을 사익추구하는데 사용한 자들에 대한 분노였다. 그리고 그들의 비상식적인 태도와 행동에 대한 규탄이었다. 하지만 100만이 넘어서면서부터 그 원동력은 단순 분노만이 아니었다.’이게 나라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국가의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었다면 그 내부에 있는 일원으로서 국가 정상화를 외쳐야한다는 시민의식, 그리고 청와대 안에 있는 자들은 전혀 느끼지 못할 책임의식이 시민들을 이끌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번 집회,시위는 어느 한 정치적 이념 노선을 추구하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활동이 아니다. 어떤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이 잘못 행동한 것이 명백하고, 그 고의성이 의심되는 바, 당연히 이를 고쳐야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활동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는 여러 잡음도 들린다. 광장의 어느 곳에서는 시민들이 관심 없어하는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 석방하라는 문구와 심지어 이석기 전 국회의원을 석방하라는 문구와 구호가 들리기도 한다. 이를 이용하여 어떤 이들은 촛불시위가 종북좌파에 의해 선동된다고 의심한다. 하지만 이곳은 광장이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주의체제를 가지고 있다. 광장에서 들리는 잡음도 민주주의라서 가능한 것이다. 북에서는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를 찬양할 수는 없다. 어떤 새누리당 의원은 시위와 집회가 열리는 광장을 없애야한다는 제안을 했다지만 그것이야말로 반민주적인 사상이다.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누구나 거리에 나올 자유가 민주주의 국가에는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촛불 시위 뒤에서 조종한다고? 요즘 시대에 누가 북으로 가고 싶어하고 북한처럼 되고 싶어하겠는가? 200만이 나왔는데도 평화로운 시위였다. 그게 북한의 방식인가? 국군의 수가 60만에 불과한데 200만이 북한의 지령을 받는다면 이 나라가 이미 망한것이 아닌가? 언제까지 7,80년대에 쓰던 북풍으로 촛불 시위의 진정성을 물타기하려는지 그 시대의 망령들이 사라져야 가능할 듯 싶다.
민주주의는 단어 그대로 국민이 주인인 시스템이다. 대통령이 그렇게 지키라고 강요하는 헌법 가장 첫 줄에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며 그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있다. 누군가 광장에 나온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나온다는 근거없는 매도를 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역대 대통령도 비리는 있어왔고 이 정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적에 비하면 큰 흠이 아니라는 말도 남겼다. 쉴드를 쳐주려면 적어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대통령을 비난하자는 프레임을 씌우던가. 이런 논리도 없는 말로 자신의 기분을 북돋는 것은 상관없지만 민중을 깎아내리는 행위는 무엇을 위함인가.
150만명이 광화문 광장에 나왔다. 청와대 앞 100m 지점까지 행진을 하고 광장시장까지 걸어온 필자에게는 결코 과장된 수치로 보이지 않는다. 그 긴 전열 속에 설치된 무대만 해도 10개 가까이 있었고 어느 곳에서는 공연을, 어느 곳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발언을, 어느 곳에서는 초등학생이 올라와 자유발언을 하고 있었다. 집회나 시위라고 부르기 힘들었다. 이건 일종의 문화현상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노인부터 부모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온 아이까지 광화문 거리에는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여러 복잡한 감정과 단 하나의 목적으로 나와있었다. 주권자가 일임한 권한을 제3자, 그것도 전문가나 실력자가 아니라 강남 아줌마, 사이비교주의 딸이 제멋대로 주무르며 자신의 이득 추구에 사용했다는 것에 분노하여 많은 시민이 밖으로 나왔다. 이들이 나온 단 하나의 목적은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주범인 박근혜 대통령이 뻔한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하고 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최종적으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에 시민들은 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광장은 열려있다. 광장을 가득채운 사람들은 부정을 저지른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대통령 사퇴와 구속을 외치고 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사실상 국정을 포기해버린 청와대를, 그리고 이 국가를 국민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탄핵 표결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누구에 말대로 가결,부결, 어느 상황에서도 이 앞은 한번도 쓰여지지 않은 역사로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광장으로 나갈지 모르겠다. 투표로는 보완되지 않는 대의민주주의의 헛점을 전 국민이 인식했다. 지난주 횃불이 광화문 앞을 지나갔다. 나는 횃불이 옮겨붙는 아찔한 순간이 오지 않길,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번 사건이 해결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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